피시방은 라면이야
피시방은 라면이야
박흥국의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안 될 놈은 안 된다.’였다. 퇴사하고 호기롭게 차린 첫 치킨집은, 오픈빨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님이 뚝 끊겨 1년도 못가 셔터를 내렸고. 그다음 손댄 노래방은 하필 바로 옆 건물에 두 배는 크고 번쩍이는 경쟁 업체가 들어서는 통에 폭삭 주저앉았으며. 세 번째 사업인 분식집은… 원인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리만 날리다가 반년 만에 접었다. 요컨대, 손대는 족족 말아 먹었다는 거다. ‘이번에도 망하면 결혼은 다음 생에 하는 거다!’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 되뇌며 맞이한 네 번째 도전이, 바로 이 피시방. [네로 피시방] 요즘 한창 뜨는 업종이라며 술자리에서 지인이 귀띔해 준 게 시작이었다. IT, 인터넷, 게임 어쩌고저쩌고. 있어 보이는 용어를 늘어놓기에 혹했던 건데. 사실, 온라인 게임에 대해 잘 모르던 박흥국은 개업에 그렇게까지 돈이 많이 필요할 줄은 몰랐다. 그저 ‘피시방은 컴퓨터 빨이래.’라는 소리에.최신 사양 본체 수십 대를 들이기로 했고. 실패하면 혀를 깨물겠다는 심정으로, 없는 돈은 긁어모으고 부족한 돈은 왕창 대출까지 받은 거다. PC방을 오픈하는 날 신형 컴퓨터가 쭈욱 나열된 그 모습 하나만큼은 장관이었으나.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투자는 엄청난 사업을 할 것처럼 받았건만, 정작 통장에 꽂히는 돈은 쥐꼬리. 좌석이 빈틈없이 꽉꽉 들어차야 겨우 대출 이자를 메우는 수준이었다. 동네에 피시방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손님들은 사양이 떨어져도 백 원이라도 싼 곳을 찾아 철새처럼 옮겨 다녔다. 그렇다고 시간당 가격을 낮추자니, 굳이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나. 어찌저찌 시간은 흘러 오픈 후 3개월이 지났고. “지금이라도 처분할까?” 카운터에서 한숨만 푹푹 쉬다 속내가 튀어나와 버렸다. 차라리 컴퓨터가 멀쩡한 지금 죄다 처분하고, 그 돈으로 다른 장사라도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진지하게 그러면 소소한 사업 밑천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덧 네 번째 폐업을 진지하게 저울질하던, 딱 그 무렵이었다. “저희 두 시간씩이요.”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카운터 너머를 내려다보니, 인형같이 생긴 여자아이가 동전과 지폐를 내밀고 있었다. 영락없는 초등학생들. 여성이 피시방에 오는 것도 흔치 않은데, 하물며 초등학생은 여아는 오픈 석 달 만에 처음. 게다가 아우라부터가 다른 게, 칙칙한 사내놈들만 득실대던 가게에 화사한 꽃이라도 한 송이 핀 것 같았다. 피시방에 웬 꼬마 아가씨들인가 싶었으나 제 돈 내고 게임 하겠다는데 그게 대수겠는가. ‘참 특이한 날도 다 있네.’ 그것보다는 제 앞날이 더 문제였으므로 금방 기억에서 날아갔다. 그런데. “저희 세 시간씩 넣어주세요.”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아이는 뻔질나게 가게를 드나들었다. 도대체 뭘 하기에 이런 곳을 오나 싶어 호기심이 생겨 지나가다 화면을 봤더니. 탕탕-! 타다다다다당-! 사내 녀석들이나 좋아할 법한 총 쏘는 게임을 제법 야무지게 하고 있었다. 곁의 친구는 뜬금없이 뜨개질 거리를 꺼내서 하곤 해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둘이 붙어 다니는 모양이 어찌나 도란도란 한지,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게가 한층 따스해지는 것 같았다. 워낙 눈에 띄는 아이들이라 주변의 이용자들이 욕설을 자제하기도 하는 진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으며.보통 시끄러운 초등학생들과 달리 조용해서 어른들도 좋아했다. 대략, 2주 정도 둘은 꾸준하게 얼굴을 비추었고.일종의 마스코트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운터에서 머리만 벅벅 긁고 있던 박흥국에게 초딩 여자아이, 이채원이 쪼르르 다가왔다. “응? 무슨 일이니? 음료 하나 먹을래?” 피시방 단골들이나 박흥국은 채원과 시연 일행에게 음료수를 사다 주곤 했기에 자연스레 물었다. 그러나 채원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다른 용무. “아저씨, 여기는 라면은 안 팔아요?”“라면…?”“피시방에서 라면 팔면 잘 팔릴걸요. 게임 오래 하니까 배고프기도 하고요.” ‘…응?’ 박흥국은 채원의 말에 피식 웃었다. ‘얘가 배가 고픈가 보네.’ 카운터에 있는 것들은 안줏거리로 파는 쥐포나 간단하게 집어 먹을 과자들 몇 개뿐. 물론, 컵라면을 파는 피시방도 꽤 있다.하지만 이곳은 프리미엄 피시방. 비싼 컴퓨터들을 앞에 두고 식사를 허용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박흥국은 과감하게 컵라면은 덜어냈다. 애당초 컵라면은 비싸게 팔면 팔리지도 않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마진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어쨌든, 애가 배고파 보여서.아쉬운 대로 초코파이라도 전해주려고 했는데. “아, 맞다.” 아까 점심 대신 먹으려고 사놨던 컵라면이 있었다. 가게의 불확실한 미래를 떠올리면 있던 식욕도 달아나는 판이라. “이거라도 먹을래? 파는 거 아니라서 그냥 줄게. 뜨거우니까 아저씨가 끓여다 주마.”“어? 돈 드릴게요.”“됐다. 욘석아. 가 있어.” 만약 사업 말고 일찍 결혼했으면, 저만한 딸내미가 있었으려나. 채원을 돌려보내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매일 야금야금 줄어만 가는 매출.이번 달 적자가 뜨면 이제 정말 비상이다. 소소한 일상의 뒤편에는 막대한 대출이 도사리고 있으니. ‘컴퓨터… 다 처분하면 얼마려나.’ 진지하게 폐업을 고려하는 와중에 초등학생 컵라면을 끓이고 있으니, 꼴이 우습긴 하다. 박흥국은 헛웃음을 흘리며 손수 이채원의 자리로 컵라면을 가져다주었다. 저 비싼 컴퓨터와 모니터 앞에서 라면? 오픈 당시엔 상상도 못 했을 일이지만.자포자기한 박흥국에겐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아이들의 배가 안 곯는 게 더 중요했다. 이채원은 컵라면을 받아 들고 정확히 3분 뒤. “햐, 맛있겠다.” 컵라면 뚜껑으로 그릇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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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조심스럽게 바람을 불어 면발을 식혔다. 그리곤. “호로록-!” 분명 조용히 흡입했으나, 어쩐지 그 소리가 크게 피시방에 울렸다. 왜냐하면. “이게 무슨 냄새지?”“라면?” 채원의 자리에서 폴폴 나기 시작한 중독적인 라면 국물의 냄새를 따라 주변의 시선이 모여든 탓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야심 차게 한 젓가락을 퍼 올린 채원이 있었다. “으으으음~! 맛있당. 히히.” 면발 한 가닥, 한 가닥 소중하게 입안으로 밀어 넣어 다람쥐처럼 빵빵한 볼. 앙증맞은 입이 오물오물 움직이더니 이내 꿀꺽 삼키면. “으으, 좋다아.” 배시시 퍼지는 진실의 미소와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빛.어두운 분위기의 피시방임에도 그 무해한 웃음에 햇살이 쏟아지는 듯하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손님들은. 꼴깍-! ‘나도 먹고 싶다.’‘출출하네.’ 하나둘 일어서서 카운터를 향했고.박흥국은 영문 모를 얼굴로, 이건 파는 게 아니라 손사래 쳤다. 하지만, 계속해서 밀려드는 요청을 모두 거절하긴 어려웠고. ‘에라 모르겠다.’ 근처 마트에 뛰어가 컵라면을 공수해 와서 주문대로 끓였다. “사장님, 그래서 컵라면 얼마예요?”“어… 그.” ‘마트에서 사 온 거라 비싼데….’ 그렇다고 손해를 볼 수도 없는 노릇. “1,500원이요.” 다른 피시방에선 찾아볼 수 없이 비싼 금액을 불렀음에도. “여기요.”“…?” 아주 순순하게 지갑이 열렸다. ‘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는 대충 알겠지만. ‘이래도 되나?’ 음식을 파는 건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다. 컵라면 하나 팔아봐야 500원 정도밖에 안 남긴 해도. 한 명이 사 먹으니 너도나도 먹으면서. 나름 쏠쏠하다. 박흥국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이채원의 자리를 바라봤다. 피시방 개업을 위해 여러 경쟁 업체를 다녀봤으나 이렇게 죄다 컵라면을 먹고 있지는 않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맛있게 먹은 거냐…. 고맙다!’ 네로 피시방 사장 박흥국의 마음속에서 이채원의 위상은 상당히 격상되었으며. 그리고 며칠 뒤. “사장님, 사장님.”“어어, 그래. 무슨 일이니?”“있잖아요.” 머뭇거리던 이채원은 해괴한 제안을 해왔다. *** PC방을 가느라 없는 돈을 아끼고 아껴서 사용 중이었다. 기존의 쥐꼬리만 한 용돈에, 친구들이랑 방과후에 간식 먹는다는 핑계로 받은 4,000원. 꼬르륵- ‘카드라도 팔까…?’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모아온 듀얼킹 카드 일부를 처분하면 매일 피시방 다닐 정도는 벌 수 있—— 헉! 아냐 아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기각했다. 이대로 쭉 묵혀두면, 미래에 몇 배가 뛸 줄 알고. 당장 돈이 필요하다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다. ‘그냥 굶자.’ 밥 먹을 돈으로 게임 한다는 마인드. 종종 따라오는 시연이가 혹시 배고프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뻥을 쳤다. ‘자존심이 있지, 얻어먹을 수는 없어!’ 어차피 게임 하다 보면 허기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로 고시원에서 살 땐 밥도 안 먹고 게임 한 적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죽었나? 짤짤짤, 다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무튼, 좀 굶는 것쯤이야. 별일도 아니라며 게임을 즐겼지만. 꼬로로로록- “으익.” 어린아이의 몸은 굉장히 솔직했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카운터에서 라면을 주문했는데. “라면…?” ‘아니, 미친 라면을 안 팔아?’ 그러고 보니, 이 피시방에서 라면 냄새를 맡은 적이 없다. 아직 라면을 팔 때가 아닌가?그래도 컵라면 정도는 있을 법하잖아? 내가 원한 건 봉지 라면이었으나, 그건커녕 컵라면도 없단다. 그제야 내가 다니던 네로 피시방을 자세히 둘러봤다. 깔끔한 인테리어, 쓸데없이 사양 높은 컴퓨터.한가한 사장님. ‘……여기 망하는 거 아냐?’ 단골 아저씨들이나 사장님이 종종 음료수 공짜로 줘서 좋았는데.다른 곳에 비해 훨씬 청결하기도 하고. 어쩐지 맨날 죽상이더라니.장사가 쉽지 않은 가보다. “……” 말을 해줄까 말까. 음식을 포기한 피시방은 듣도 보도 못했다. 미래엔 점점 더 당연해지는 거라 내겐 상식이었으나, 지금은 아닌가 봐. “아저씨, 피시방에서 라면 팔면 잘 팔릴걸요. 게임 오래 하니까 배고프기도 하고요.” 고민하다가 조언을 건넸지만. 내 손에 들어온 건 사장님의 점심 밥이었다.정확히는 컵라면. 착하긴 진짜 착하시네. 에휴. 내가 쏟을까 걱정인지 계산대 쪽에서 노심초사하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탁- 나무젓가락을 분리해서. ‘라면의 힘을 보여드릴게요.’ 다소 과장되게, 라면 CF 속 연예인들처럼 후- 불어가며 사방팔방 냄새를 풍기며 먹었다. 있지도 않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혼자 생쇼를 하고 나니.어느새 카운터 앞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장님은 결국 컵라면을 정식으로 메뉴판에 추가시켰고.난 단골 피시방의 폐업을 조금이나마 늦춰서 뿌듯했다. 그러나.계속된 피시방 출석에 문제가 생겼다. “도, 돈이 없성….” 뭘 먹고 다니기에 맨날 용돈을 달라는 건지 엄마가 물어온 것. 한창때의 여자아이에게 그게 무슨 실례되는 질문이냐며 뻬액-하고 빠져나오긴 했지만. “힝.” 감질나게 한 시간만 하고 나오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랙 걸리는 아빠 노트북은 쓰기 싫고—진짜 듀얼킹 카드라도 처분하기 직전까지 몰렸을 때.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대로 피시방으로 달려가서. “아저씨! 사장님! 사장님!”“어어, 그래. 무슨 일이니?”“있잖아요.” 이걸 어떻게 설득하지.아이디어는 있는데. “라면을 팔죠?”“응? 이제 파는데?”“아뇨, 그거 말고요.” 컵라면 말고 그릇에 담아서. “봉지 라면이요.” ‘돈 벌게 해드릴 테니까, 자리 하나만 공짜로 주세요.’ 작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