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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기사에 없는 이야기

완벽한 파혼을 위하여 — novel.naver.com · All chapters

21. 기사에 없는 이야기

지은은 출근길에 자신의 결혼 기사를 접했다. 기사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인 이름은 차현우가 아닌 차민석이었다.

[태경홀딩스 차현우 대표 혼인… 배우자는 동생의 전 약혼녀]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천천히 화면을 내렸다. 차현우가 최근 혼인신고를 마쳤으며 배우자는 태경라이프에 근무하는 윤 모 대리라고 했다.

그 아래에는 차민석 상무와 오랫동안 교제했고 결혼을 준비하다 최근 파혼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기자는 두 사람이 언제부터 알고 지냈는지, 왜 파혼했는지는 쓰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한 줄도 없었다. 태경라이프 직원이라는 말 외에는 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기자에게 연락을 받은 적도 없는데 기사가 먼저 나왔다. 사진은 현우의 공식 행사 사진뿐이었지만, 직장 사람들이라면 '윤 모 대리'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기사 아래 댓글은 많지 않았다. 형제가 한 여자와 결혼하려 했느냐는 반응, 파혼 뒤에 결혼한 거면 무슨 문제냐는 반응이 나란히 있었다. 지은은 더 읽지 않고 화면을 껐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서민아가 평소와 같이 인사했다. 다른 부서 직원 둘은 지은을 알아보고 대화를 멈췄다가, 지은이 지나간 뒤에야 다시 말을 이었다. 적어도 모두가 자신에게 달려와 질문하는 일은 없었다.

“윤 대리, 이거 봤어요?”

강유나가 보여 준 건 기사가 아니라 수정된 본사 협의 자료였다.

“인사팀 답변 왔다면서요. 팀장님이 담당자 표시 다시 넣으래요.”

지은은 파일을 열어 확인했다. 삭제됐던 자기 이름이 고객 문의 분석 담당란에 돌아와 있었다.

전날 오후 인사팀에서 받은 답변은 비교적 명확했다. 현재 진행 중인 브랜드 전략 업무와 관련해 결혼만을 이유로 제한할 사유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향후 지주사와 직접적인 이해충돌이 예상되는 신규 업무는 사전에 검토하자는 내용이었다.

팀장은 답변을 확인하고 지은의 본사 회의 참석을 허락했다. 다만 발표는 유나가 맡고, 지은은 직접 분석한 부분에 관한 질문에 답하도록 했다. 업무 자체보다 누가 앞에 나서느냐에 민감해진 것은 여전했지만, 최소한 자신이 한 일에서 이름까지 지워지는 상황은 피했다.

“이 부분은 윤 대리가 설명해요. 내가 고객 문의 원본까지 다 확인한 건 아니니까.”

“네. 수치 분류 근거도 같이 정리할게요.”

유나는 자리에 앉았다가 다시 돌아봤다.

“기사… 봤죠?”

“봤어요.”

“아무래도 오늘은 좀 시끄럽겠네요.”

“그렇겠죠.”

유나는 그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지은도 굳이 기사를 설명하지 않았다. 오전 내내 협력업체는 시안 확인을 재촉했고, 팀장은 보고 시간을 앞당겼다. 그사이 지은의 휴대전화에는 축하한다는 말과 괜찮으냐는 말이 구분되지 않은 채 쌓였다.

*

점심시간에 언니 윤지혜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도 기사 봤어.”

지은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없는 복도 끝으로 나갔다.

“뭐라고 하셔?”

“결혼 기사 난 건 그렇다 치는데, 네 파혼 얘기까지 써야 하냐고. 아침부터 전화하시더라.”

“아무래도 사람들이 아는 일이니까.”

“아는 사람이랑 기사에 내는 건 다르잖아. 너 회사 다니기 불편해서 어떡해.”

혼인신고 때 증인으로 서 준 지혜에게 결혼 자체는 새 소식이 아니었다. 언니가 문제 삼는 건 기사에 다시 실린 민석의 이름이었다.

“그냥 그 사람이 잘못해서 헤어졌다고 하면 안 돼? 엄마는 네가 왜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냐고 하셔.”

“그렇게 설명하면 또 왜 잘못했냐고 물어볼 거야.”

“물어보면 사실대로 얘기하면 되잖아.”

“기자한테까지?”

지혜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네 마음이지. 그런데 넌 늘 귀찮아질까 봐 네가 설명할 수 있는 것도 포기하는 것 같아.”

지은은 복도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예전에도 언니는 종종 그런 말을 했다. 상황이 불편해지는 것을 피하려다가 정작 가장 오래 불편해하는 사람은 지은이라고.

“내가 말 안 하는 건 수진이 때문이 아니야.”

“그런 줄 알아. 민석 씨 때문도 아니고.”

“내가 결혼한 이유를 사람들이 납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거기까지 설명해야 할 일도 아니고.”

“그럼 네가 어디까지 말할 건지는 정해 둬. 계속 이렇게 묻기만 하면 너만 지쳐.”

언니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알아서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지은은 통화 기록을 지우지 않고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 자리로 돌아갔다.

*

오후에 현우에게 연락이 왔다.

“기사 봤어요?”

“아침에 봤어요.”

“회사 쪽에서 추가 문의를 받고 있어요. 기사에 나온 과거 약혼 관계도 확인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 부분은 저희 회사 사람들도 아는 일이잖아요.”

“그렇다고 회사가 개인사를 대신 확인할 수는 없으니까요. 필요한 경우 최소한의 입장을 낼지 검토 중이에요.”

지은은 모니터에 띄워 둔 자료를 잠시 내려다봤다.

“어떤 입장인데요?”

“혼인신고를 한 건 사실이고, 결혼을 결정한 건 파혼 이후라는 정도요. 아직 확정한 건 아닙니다.”

“제가 왜 파혼했는지는요?”

“그걸 확인하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질문이 더 나올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럼 퇴근하고 얘기해요. 지금은 회의 자료 마저 정리해야 해서요.”

“알겠어요. 오늘은 제가 좀 늦을 것 같습니다.”

통화를 마친 지은은 현우가 먼저 입장을 내겠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가 알려 준 건 자신이 선택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 거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현우는 아직 없었다. 지은은 가방을 내려놓고 기사 한 편을 다시 열었다. 오전에 읽었을 때는 지나쳤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차현우가 과거 혼담을 논의했던 집안과 태경그룹 사이의 협력 관계에도 관심이 쏠린다는 내용이었다. 사업이 중단됐다는 말은 없었다. 그럼에도 기자는 결혼 기사 끝에 사업 이야기를 덧붙여 놓았다.

지은은 얼마 전 차정식이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이 현우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 결정이 누군가에게는 투자와 협력 관계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현우가 돌아온 건 아홉 시가 가까워서였다. 그는 현관에서 지은의 신발을 확인하고 거실로 들어왔다.

“먼저 와 있었네요. 저녁은 먹었어요?”

“네. 대표님은요?”

“아직이요. 조금 전에 회의가 끝났어요.”

현우는 재킷을 벗어 두고 주방으로 갔다. 지은은 그를 따라가지 않고 거실에서 기다렸다. 현우는 물을 마시고 돌아와 맞은편에 앉았다.

“아버지한테도 연락을 받았어요.”

“기사 때문에요?”

“네. 결혼 관련 입장을 정리하라고 하시더군요. 기존 협력사에서도 몇 가지를 확인하려고 해서요.”

“민석 씨가 진행하는 투자안이요?”

현우가 지은을 봤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기사에 사업 얘기도 있어서요. 자세한 건 몰라요.”

“그 사업 말고도 관련된 관계가 있지만, 지금 논의 중인 안건이 하나 있기는 해요.”

지은은 구체적인 투자 조건까지 물을 생각이 없었다.

“회장님은 제가 뭘 해주길 바라세요?”

“확인되지 않은 얘기가 확대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세요. 당신의 의사를 묻기 전에 어떤 답변도 하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공식 입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건요?”

“상황에 따라서는요. 아무 답변도 하지 않으면 그게 또 다른 추측의 근거가 되기도 하니까.”

“답변을 하면 다른 질문을 하겠죠.”

“그럴 겁니다.”

지은은 웃지도 못하고 현우를 바라봤다. 그는 이 문제에 정답이 있다는 듯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마다 불편한 결과가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대표님은 어디까지 확인하고 싶으세요?”

“혼인 사실은 이미 알려졌고, 시간 순서가 잘못 전해지는 건 막는 게 좋겠어요. 파혼 이전부터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보도되는 건 사실이 아니니까요.”

“그럼 제가 파혼한 이유도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사람들이 알 테니까.”

“그건 별개의 문제죠.”

“기사 읽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모든 사정을 공개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우의 대답이 뜻밖이라 지은은 그를 살폈다.

“회사 쪽에서는 오히려 다 알고 있는 게 편하지 않아요?”

“편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다 발표하는 건 아니에요.”

“제 파혼 이야기가 사업에 도움이 된다면요?”

현우는 컵을 내려놓았다.

“그 이야기를 협상에 사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결혼이 사업에 아무 영향도 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지은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어쨌든 현우의 결혼은 회사의 문제이기도 했다. 자신이 그의 배우자라는 이유로 그런 문제에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달라지지 않았다.

“저는 파혼 이유를 기사에 내고 싶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시점은 확인해도 괜찮아요. 제가 파혼한 뒤에 결혼을 결정했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대신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는지,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까지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부분은 사적인 문제라고 답하면 되겠네요.”

지은은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한테 그런 답변을 하면 끝인가요?”

“끝이라고 장담은 못 하죠. 기사 하나에 모든 질문이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회사가 입장을 내는 게 대표님한테 유리한지는 따로 판단하셔야겠네요.”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제가 판단해야 할 부분이죠. 다만 당신 이름을 걸고 말하는 내용은 당신과 먼저 상의하겠습니다.”

그 말에 지은은 아까보다 자세를 편하게 고쳐 앉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다. 계약서에 서명할 때만 해도 이런 대화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회장님이 그걸로 만족하실까요?”

“만족하지 않으셔도 어쩔 수 없죠.”

“대표님한테도 불리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말을 할 수는 없어요. 더구나 당신이 원하지 않는 얘기를 할 이유도 없고요.”

지은은 자신이 질문을 많이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현우는 지은의 선택을 대신 내려 주지 않았고, 자신에게 어떤 불편이 생길지도 감추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오히려 대화를 이어 가기 쉽게 했다.

두 사람은 홍보 담당 부서에 전달할 범위를 정리했다. 사실관계는 최소한으로 확인하되, 파혼 경위나 개인적인 만남에 관한 질문에는 응하지 않기로 했다. 공식 발표를 실제로 할지는 외부 문의의 추이를 보고 현우가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

대화가 끝났는데도 현우는 방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간단한 식재료를 꺼내더니 주방에서 달걀을 깨기 시작했다.

“직접 만들어 드세요?” 지은이 물었다.

“배가 고프면요.”

“아까 안 드셨다면서요. 지금까지 참으신 거예요?”

“먹으려고 했는데 얘기가 길어졌죠.”

지은은 괜히 미안해졌다. 현우는 달걀을 풀고 팬을 달궜다. 능숙하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손놀림이 서툴지도 않았다.

“회사에서는 식사도 제대로 못 하세요?”

“그럴 때도 있죠. 지은 씨는 오늘 어땠어요?”

“저는 회의 준비하느라 점심을 대충 먹긴 했는데, 저녁은 먹었어요.”

“일은 정리됐고요?”

“네. 인사팀 답변 받고 담당자로 이름도 다시 들어갔어요. 다음 회의에도 참석하기로 했고요.”

“다행이네요.”

그는 그 일에 자신이 기여했다는 듯 말하지도, 절차를 다시 캐묻지도 않았다.

현우는 익은 달걀을 접시에 옮겼다. 지은은 평소 그가 거실에서 서류를 읽거나 전화하는 모습밖에 보지 못했다. 집에서 혼자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은 처음이었다.

“같이 먹을래요?”

“저녁 먹었다니까요.”

“그럼 옆에 앉아 있어도 되고요.”

그 대답이 우스워 지은은 조금 웃었다. 현우는 무슨 뜻인지 묻지 않고 식탁 의자를 빼 주었다. 지은은 그가 식사를 하는 동안 오늘 회사에서 강유나와 정리한 자료 이야기를 했다. 현우도 자신이 잘 모르는 태경라이프 실무 문제에는 함부로 의견을 보태지 않았다.

식탁을 치운 뒤 지은이 먼저 잘 자라는 인사를 했다. 현우는 내일 아침 일정이 빠르다며 먼저 일어나도 된다고 했다.

지은은 계단을 올라가다 거실 쪽을 한 번 돌아봤다. 현우는 식탁에 앉아 휴대전화로 업무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앉아 있던 자리였다.

이 집에 들어온 첫날에는 어디까지가 자신의 공간인지부터 신경 썼다. 오늘은 그와 저녁 시간을 꽤 오래 보냈다는 사실을 방에 들어와서야 깨달았다.

*

수요일 오전, 지은은 본사 회의 자료의 마지막 수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인사팀에서 받은 답변은 별도로 저장했고, 유나와 발표 순서도 정리했다.

그때 휴대전화 화면에 익숙한 이름이 떴다.

차민석.

지은은 벨이 몇 차례 울리는 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현우와의 관계가 파혼 이후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그 뒤에는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기 전에 지은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민석은 그 흔한 인삿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기자한테 연락 왔어.”

지은은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업무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회사에서 듣고 싶지 않았지만, 전화를 끊으면 다시 걸려올 것 같았다.

“그래서?”

“너한테도 파혼 이유 물었어?”

“나한테 직접 연락 온 적 없어.”

상대는 잠시 조용했다. 지은은 민석이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기다렸다.

“그럼 너, 어디까지 말할 생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