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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취소할 수 없는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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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취소할 수 없는 결혼식

지은은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 이름이 반갑기만 했다. 지금은 이름만 봐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은은 숨을 깊게 내쉬고 액정을 옆으로 밀었다.

— 지은아. 너 지금 태경호텔에 전화해서 뭐라고 한 거야?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민석의 날 선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인사도 사과도 없었다.

“들으신 그대로예요. 예식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지은은 낮고 단정한 어조로 대답했다. 옆에서 유자차 잔을 정리하던 언니 지혜가 눈살을 찌푸리며 지은을 바라보았다. 지은은 손짓으로 언니를 안심시키며 말을 이었다.

— 너 진짜 미쳤어? 내가 어제 다 이야기했잖아. 주차장에서 한 내 말은 통째로 귓등으로 들은 거야?

“어제 내가 한 말도 통째로 잊으신 것 같네요, 민석 씨. 난 당신하고 파혼하겠다고 했어요. 약혼반지도 돌려줬고요. 결혼식을 취소하는 건 그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에요.”

— 야, 윤지은!

민석이 거칠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주변의 기계음과 셔터 소리로 보아, 그 역시 회사 로비나 비서실 근처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모양이었다.

— 네가 화난 거 알아. 내가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할 테니까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 수진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정리한다고 했잖아. 오늘 중으로 홍보팀에서 다른 계열사로 발령 내든가 할 테니까……

“내가 화난 건 민석 씨가 수진이랑 바람을 피워서만이 아니에요.”

지은이 말을 잘라버렸다. 민석은 잠시 말을 멈췄다.

“5년 동안 당신을 믿었는데, 이제 와서는 그 시간까지 의심하게 됐어요. 그런데도 제대로 사과하기는커녕 ‘집안 체면’과 ‘행사 진행’만 들먹이는 당신한테 환멸이 났기 때문이에요.”

— 지은아……

“우린 끝났어요. 이미 끝난 결혼식을 진행할 이유가 없죠.”

— 그만해! 너 지금 감정적으로 굴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거야.

민석의 어조가 다시 강경하게 바뀌었다.

— 5년을 만났어. 우리가 쌓아온 시간이 몇 년인데, 하룻밤…… 아니, 몇 달의 실수 때문에 이걸 다 엎겠다고? 우리 나이가 몇인데 고등학생 연애하듯 굴어? 당장 다음 달에 친척들이랑 그룹 임원들 다 모이는 자리야. 아버지가 이 사실 알면 어떻게 되실지 생각 안 해봤어?

“그건 민석 씨 사정이죠.”

— 뭐?

“민석 씨 가문 체면이나 회장님 눈치가 그렇게 중요했으면, 제 친한 친구랑 네 달이나 바람피우는 짓부터 하지 말았어야죠. 자기 손으로 뿌린 씨앗인데 왜 그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려 해요?”

— 너 진짜 말을 그렇게……!

“호텔 측에는 제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서면 통보서를 보낼 생각이에요. 담당 매니저님한테도 이미 말씀드렸어요. 신부가 들어가지 않는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지, 민석 씨가 혼자 잘 판단해서 진행해 보세요.”

— 지은아, 제발! 잠깐만 내 말 들어봐. 주말에 나랑 따로 만나. 어? 내가 집 앞으로 갈 테니까……

“전화 끊겠습니다. 앞으로 개인적인 연락은 삼가 주세요.”

지은은 민석이 무어라 더 소리치기 전에 망설임 없이 종료 버튼을 눌렀다.

통화를 끊은 지은은 휴대전화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손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그에게 양보하면 앞으로도 달라질 건 없었다.

* * *

“말이 통하는 놈이 아니네, 저거.”

옆에 서 있던 지혜가 팔짱을 낀 채 혀를 찼다.

“너 호텔에 예약 취소 정식으로 안 된다고 했지? 어떻게 된 거야?”

지은은 소파 앞 탁자에 노트북을 펴며 한숨을 내쉬었다.

“태경호텔 예식장 계약자 명의가 차민석으로 되어 있어. 1차 계약금도 민석 씨 개인 카드로 결제됐고. 호텔 규정상 계약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내 요청만으로 예약을 취소할 수 없대.”

“아니, 신부가 안 들어가겠다는데 취소가 안 된다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있어?”

“호텔 입장도 이해는 돼. 대기업 회장 일가 행사인데, 신부 쪽 말만 듣고 취소했다가 나중에 계약자인 차민석 씨가 문제 삼으면 호텔도 곤란해지니까. 거기가 태경그룹 계열사이기도 하고.”

지은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당장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어도 호텔과 체결한 계약의 해지 여부는 계약자인 차민석의 의사에 달려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둬야지.”

지은은 태경호텔 웨딩팀 대표 메일과 담당 매니저의 메일 주소를 입력했다.

\[제목: 3주 뒤 예정된 차민석-윤지은 예식 건 관련, 신부 윤지은의 파혼 및 불참 공식 통보의 건\]

본문에는 자신이 더 이상 차민석과의 혼인 의사가 없으며, 해당 날짜의 예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서술했다. 거기에 예식장 계약의 해지 절차와 위약금 부담 주체를 서면으로 안내해 달라는 요청까지 덧붙였다.

이어서 자신이 직접 결제하고 계약했던 업체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 지은의 개인 카드로 결제. 환불 규정 확인 후 1차 취소 요청.

* 청첩장 추가 인쇄 건: 지은이 결제함. 즉시 인쇄 중단 및 취소 처리.

* 신혼여행 비행기 표 및 숙소: 지은 명의 예약 건 취소. 위약금 공제 후 환불 수속.

업체마다 환불 규정이 달랐다. 이미 제작에 들어간 청첩장은 일부 비용을 돌려받을 수 없었고, 스드메 패키지도 예식일까지 남은 기간을 기준으로 위약금이 발생했다.

지난 몇 달간 결혼을 준비하며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결혼식을 예정대로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은은 예상 환불액과 위약금을 따로 정리했다. 지금은 손해를 최소화하고 자신의 생활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 * *

정리가 거의 끝날 무렵, 지은은 외장 하드에 보관되어 있던 ‘결혼 준비’ 폴더를 열었다.

그 안에는 수백 장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드레스 피팅 날 찍은 사진, 제주도에서 스냅 촬영을 하며 어색하게 웃던 모습, 프러포즈를 받던 날 고급 레스토랑에서 민석이 건넨 꽃다발을 들고 서 있던 사진들.

지은의 손가락이 사진 한 장 위에서 멈췄다.

2년 전, 민석이 전략기획팀 차장으로 올라가고 지은이 대리로 승진했던 날 찍은 셀카였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소탈하게 웃고 있던 차민석.

그때의 그는 제법 다정했다. 지은이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기도 했다.

‘언제부터 변했던 걸까.’

지은은 사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지은아, 안 봐도 돼. 다 지워버려.”

지혜가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은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지워.”

지은은 폴더 이름을 ‘완료_결혼’에서 ‘차민석_정리’로 변경한 뒤, 깊숙한 드라이브 밑으로 옮겨두었다.

지난 5년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를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까지 거짓은 아니었으니까.

* * *

오전 11시. 지은은 휴대폰을 들고 거실 창가로 걸어갔다.

이제 부모님께도 파혼 사실을 알려야 했다.

지은은 어머니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짧게 울리고 반가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 지은아! 안 그래도 전화하려 했는데. 어제 보내준 청첩장 이모들한테 다 돌렸다. 다들 신랑감이 재벌가 아들이라고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어머니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지은은 가슴이 시려왔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딸의 결혼을 자랑스러워하던 어머니였다.

“엄마.”

— 응, 왜 그래? 목소리가 왜 이렇게 가라앉았어? 또 일 때문에 피곤해?

“엄마,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지은은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나 민석 씨랑 결혼 안 해요. 파혼하기로 했어요.”

— ……뭐?

수화기 너머의 정적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수초간의 침묵 끝에 어머니의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 지은아,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결혼식이 3주 남았는데 파혼이라니? 또 민석 씨랑 싸웠어? 예식장 문제 때문에 그래?

“아니요, 싸운 거 아니에요.”

지은은 담담하게, 그러나 숨김없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제 지하 주차장에서 목격한 차민석과 박수진의 외도, 그리고 그 관계가 네 달이나 지속되었다는 사실까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 그…… 그 개자식이……! 감히 네 친구랑? 네가 그렇게 손발이 닳도록 수발을 들어줬는데 어디서 그런 짓거리를 해?!

어머니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려 나왔다.

— 당장 그놈 집안에 찾아가야겠다! 회장이고 뭐고 간에 남의 집 소중한 딸 인생을 이렇게 짓밟아 놓다니! 내가 가만 안 둬!

“엄마, 참으세요.”

지은이 어머니를 다독였다.

“제가 다 정리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나서서 싸우시면 일만 더 지저분해져요. 청첩장 돌리신 분들한테는 죄송하지만, 제가 차차 사과드리고 취소할게요.”

— 지은아…… 불쌍해서 어쩌니, 내 딸…… 그 더러운 놈들한테 무슨 꼴을 당한 거냐……

분노 끝에 찾아온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지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젯밤 차민석 앞에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부모의 울음소리에 반응해 기어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은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닦아냈다.

“죄송해요, 엄마……. 하지만 그 집안에 들어가서 평생 무시당하고 사는 것보다 지금 끝내는 게 맞아요. 아빠한테도 잘 말씀해 주세요. 민석 씨 집안 연락 오면 절대로 받지 마시고요.”

통화를 마친 지은은 창문에 이마를 기대었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았다. 부모님께까지 알리고 나니 파혼이 더욱 실감 났다.

* * *

오후 1시 30분, 태경라이프 본사.

지은은 오전에 반차를 쓰고 오후에 출근했다. 눈 밑에 그늘이 가득했지만, 단정하게 차려입은 슈트와 붉은 립스틱으로 피곤한 기색을 가렸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익숙한 타자 소리와 전화 통화 소리가 맞아주었다.

“윤 대리님, 오전에 드레스 최종 피팅 잘하고 오셨어요? 얼굴이 조금 피곤해 보이시네.”

팀원이 인사를 건넸다. 지은은 입꼬리를 올려 무난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 조금 피곤하네요. 급한 업무부터 확인할게요.”

지은은 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사적인 일과 별개로 회사에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가 진행되고 있었다.

결재함에는 오전에 처리되지 못한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그중에는 전날 지은이 최종 점검해 제출했던 ‘신규 브랜드 출시 전략안’의 수정본이 들어있었다.

문서를 훑어보던 지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최종 보고자가 차민석인 것은 전날과 같았다. 달라진 것은 보고서 뒷장에 실무 책임자로 기재되어 있던 윤지은의 이름마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그동안은 민석과의 연애 관계였고, 그가 성과를 내야 가문 내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기에 최종 보고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묵인해 왔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까지 빠진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때, 사내 메신저 알림음이 켜졌다.

차민석 실장: 윤지은 대리, 신규 브랜드 전략안 수정본 들고 실장실로 올라오세요.

지은은 자판 위로 손을 올렸다.

윤지은 대리: 수정본 확인했습니다. 특이사항 없어 결재 올려두었으니 시스템상으로 확인 부탁드립니다.

차민석 실장: 직접 설명 들을 부분 있습니다. 당장 올라오세요. 업무 지시입니다.

마지막에 덧붙은 ‘업무 지시’라는 네 글자를 바라보던 지은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지은은 서류 봉투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은이 속한 브랜드전략팀은 전략기획실 산하 조직이었고, 차민석은 그 전략기획실의 수장이자 태경그룹 회장의 아들이었다.

* * *

4층 전략기획실장실.

통유리로 둘러싸인 넓은 사무실 안에서 차민석은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어젯밤 주차장에서 당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평소 회사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지은이 문을 열고 들어가 서류를 책상 위에 놓았다.

“요청하신 수정안입니다. 유통망 마진율 부분 재조정해서 반영했습니다.”

민석은 서류를 훑어보는 척하다가, 이내 서류를 덮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앉아, 지은아.”

“업무 관련 설명은 서류에 다 작성해 두었습니다. 보시고 의문 나는 점은 메신저로 남겨주시면……”

“앉으라고 했어.”

민석의 목소리에 서늘한 권위가 실렸다. 지은은 한숨을 내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민석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너 설마 부모님한테까지 파혼한다고 이야기할 생각이야?”

민석이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 이미 말씀드렸어요.”

민석의 눈매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지은이 실제로 부모님에게까지 알릴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너 정말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집안 어르신들까지 끌어들이면 일이 어디까지 커질지 계산이 안 서? 아버지 아시면 나한테 어떤 불이익이 올지 알면서 그래?”

“그건 민석 씨가 외도를 저지를 때 계산했어야 할 문제입니다.”

지은의 흔들림 없는 태도에 민석이 이를 악물었다.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내가 수진이 홍보팀에서 뺐어. 지방 지사 발령 요청 올려뒀다고. 됐지? 내가 이 정도로 조치했으면 너도 성의를 보여야 할 거 아니야!”

지은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박수진을 지방으로 보내는 것이 자신에게 선심이라도 쓰는 듯 말하는 그의 태도가 참으로 역겨웠다.

“민석 씨. 박수진 씨를 어디로 보내든 그건 당신들 사정이고요. 전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에게 환멸을 느낀 거예요. 수진이가 없어진다고 해서 당신이 저지른 배신이 사라지나요?”

“윤지은!”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돼서 할 일이 많아서요.”

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민석이 책상을 쾅 소리 나게 내리쳤다.

“너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내가 순순히 너 보내줄 것 같아? 너 이 회사에서 내 영향력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지은은 문고리를 잡은 채 고개를 돌려 민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해보세요. 당신이 어디까지 치사해질 수 있는지, 나도 구경 좀 해보죠.”

지은은 민석의 일그러진 얼굴을 뒤로하고 미련 없이 실장실을 나왔다.

* * *

오후 5시 무렵.

사무실로 돌아와 남은 업무를 처리하던 지은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화면에 찍힌 번호는 저장되지 않은 유선전화 번호였다.

지은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 윤지은 대리인가?

나지막한 여성의 목소리. 지은에게도 익숙한, 태경그룹 회장의 재혼한 아내이자 차민석의 친모인 오미경 여사였다.

“네, 윤지은입니다.”

— 민석이한테 이야기 들었다. 너희 둘이 결혼을 앞두고 불미스러운 다툼이 있었다더구나.

오미경의 어조는 차분했지만, 지은의 사정부터 물어볼 생각은 없는 듯했다.

“여사님, 단순한 다툼이 아닙니다. 저는 차민석 실장과의 혼담을 진행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파혼을 통보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가벼운 실소가 흘러나왔다.

— 윤 대리. 청첩장까지 돌린 결혼이야. 우리 가문의 명예와 그룹의 신뢰가 걸려 있는 문제란다. 네 개인적인 감정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야.

“저에게는 제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다.”

—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좋다. 전화로 길게 말할 건 아니지. 내일 오후 2시, 청담동 갤러리 모네 프라이빗 룸으로 나오거라.

오미경은 지은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 결혼을 진행하든 무산시키든, 우리 가문에 입힌 손해와 책임 문제는 정식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니? 내일 보자꾸나.

뚝.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지은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차민석은 결국 어머니에게까지 이 문제를 가져간 모양이었다.

청담동 갤러리 모네. 내일 오후 2시.

지은은 잠시 망설이다가 휴대전화 일정표에 약속을 입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