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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능력 각성

염력 쓰는 너클볼 투수가 되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1화 능력 각성

1화 – 능력 각성   나는 천천히 투구 폼을 잡았다.   어깨의 힘을 빼고, 손가락 마디로 공의 실밥을 살포시 눌렀다.   수만 번을 던졌으나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데로 날아가지 않았던 공.   너클볼을 향한 내 마지막 미련을 담아 공을 밀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한 마리의 나비였다.   버터플라이 볼(Butterfly ball)   너클볼의 또 다른 이명.   공이 허공을 날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고 붙은 아름다운 별명.   내 손끝을 빠져나간 공이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공중을 정처 없이 유영하듯, 왼쪽과 오른쪽으로 꿈틀거리며 날아갔다.   철썩-   홈 플레이트 뒤쪽 그물에 공이 들어갔고, 나는 멍하니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이, 이게 뭐지? 너클볼? 방금… 내가 던진 거라고?’   사실 수만 번을 던지면 한 번은 회전 없이 나가긴 한다.   너클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이 던져지긴 했다는 것이다.   ‘근데 그건 실전성이 떨어지는 너클볼이었지.’   쉽게 말해서 그냥 배팅볼이었다.   회전이 없긴 했지만, 너클볼 특유의 무브먼트가 크지 않은 공.   회전이 미세하게 더 걸려서 생긴 현상이고, 사실 너클볼 투수에게는 실투에 분류되는 공들이었다.   ‘그런 공만 던졌는데… 방금 그 공은 뭐지?’   단순한 너클볼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하고 상상만 했던 그 궤적.   내가 생각해 왔던 가장 이상적인 궤적.   그 궤적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 찰나의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허겁지겁 바닥에 굴러다니는 야구공을 집어 들었다.   방금 전의 감각을 최대한 떠올려 다시 투구 자세를 잡고 공을 던졌다.   쉬익-   손을 떠난 공이 다시 한번 공중에서 흔들렸다.   새가 날개짓하듯이 허공을 유영했다.   야구공의 빨간 실밥이 정지된 듯 또렷하게 보인 채, 그물망 한구석에 박혔다.   나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너클볼을 던졌다.   평생을 바랐던 그 공.   수만 번을 던지며 던지고 싶었던 그 너클볼이 지금 내 손끝에서 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던졌을까.   호흡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의식이 돌아왔다.   ‘… 잠시만, 내가 이걸 대체 어떻게 던진 거지?’   정신이 들자,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냉정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던지는 감각이 평소와 달랐나? 아니면 릴리스 포인트가 달랐나?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 자체는 평소 연습할 때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하체부터 전달되는 힘도, 팔이 돌아가는 스윙 궤적도 늘 던지던 그 폼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가장 위화감이 드는 것은 바로 너클볼의 궤적이었다.   ‘아무리 내가 던진 것이라고 해도… 내가 머릿속으로 그린 궤적 그대로 움직인다는 게 말이 되나?’   너클볼은 투수 본인조차 어디로 갈지 모르는 도박 같은 구종이다.   공기 저항과 미세한 공기 흐름으로 궤적이 정해지는 것.   그것이 너클볼의 본질이었다.   한두 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꺾인 것이라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수십 구의 공이 전부 내가 머릿속으로 그린 그 궤적을 따라 날아갔다.   ‘게다가… 그 모든 공이 단 한 구도 빠짐없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갔어.’   원래 너클볼은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한가운데를 타깃으로 삼고 던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 공들은 내 머릿속에 그린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면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한가운데에 도달했다.   이건 심상치 않은 이슈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닥의 공을 천천히 집어 들어 너클볼 그립을 지그시 쥐었다.   가죽에 얹힌 손가락에 감각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설마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늘 단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너클볼 궤적을 떠올렸다.   이번 목표 지점은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가 아닌 오른쪽 맨 위 가장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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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조금 전 너클볼을 던질 때 느꼈던 감각을 되살려 공을 밀어 던졌다.   공이 손가락 끝을 떠난 바로 그 찰나.   ‘… 어?’   허공으로 날아간 야구공과 연결된 듯한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내 의지가 공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움켜쥐고 있는 듯한 감각.   손끝을 떠난 공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내가 떠올렸던 그 궤적을 그렸다.   철썩-!   그물망 오른편 최상단.   내가 목표로 정했던 그곳에 정확히 박혀버렸다.   ‘……’   나는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좀 전에 너클볼을 던졌을 때는 무아지경으로 던져 느끼지 못했던 이 감각.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나와 허공에 있는 야구공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된 듯한 감각.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말이 안 돼… 내가 그린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내가 원하는 곳에 정확히 박히는 너클볼이라고?’   나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이번엔 패스트볼 그립을 쥐었다.   마운드 흙을 박차고 존 왼쪽 하단을 향해 전력으로 던졌다.   쉬익-   철썩-!   그러나 공이 처박힌 곳은 왼쪽 상단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패스트볼조차 원하는 곳에 넣지 못하는 내 제구력이다.   패스트볼은 제구가 안 되는데, 정작 제구가 불가능한 너클볼은 원하는 코스로 정확히 박힌다?   이건 내 실력이나 컨디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까지 공들을 집어 들어 내가 아는 모든 그립을 총동원해 차례로 뿌려보았다.   하지만 단 하나의 공도 내가 머릿속에 그린 궤적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심지어 제구조차 처참했다.   ‘… 오직, 너클볼을 던질 때만이라고?’   가설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다시 너클볼 그립을 쥐었다.   손가락 끝으로 공을 누르는 순간, 공과 연결된 듯한 감각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나는 그 감각을 살려 그대로 공을 밀어 던졌다.   철썩-   공은 또다시 내가 원했던 그물망 구석을 정확히 직격했다.   궤적도 내가 머릿속으로 그린 움직임이었다.   이번엔 확신을 얻기 위해, 완전히 다른 궤적을 머릿속에 그렸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너클볼.   투구 자세를 잡고 공을 밀어 던졌다.   손가락을 떠난 공이 나비처럼 흔들리며 날아가다, 포수 미트 위치에 도달하기 직전.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솟구친 야구공이 그물망 상단을 강하게 때렸다.   철썩-   확실했다.   이건 물리법칙을 위배했다.   회전이 없는 너클볼이 홈 플레이트 앞에서 수직에 가깝게 떠오르는 것은 어떤 물리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내가 가진 지식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염력인가?’   물체를 원하는 데로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   어쩌면 나는 염력을 각성한 것이 아닐까?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던지며 실험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수십 번의 피칭 끝에 도출해 낸 결론.   ‘맞아. 이건 염력이야.’   염력을 쓰는 조건은 명확했다.   첫째, 손에 쥔 것이 야구공일 것.둘째, 야구공을 너클볼 그립으로 던질 것.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 허공에 있는 야구공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었다.   ‘일단 염력 조건이 발동하면, 그 이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어.’   마음만 먹으면 너클볼 그립을 쥔 채 100마일(161km/h)이 넘는 강속구를 던질 수도 있었다.   너클볼 그립으로 다른 변화구들을 던질 수도 있었다.   슬라이더, 커브 등등.   내가 원하는 궤적을 그릴 수 있었기에 다른 변화구의 궤적을 흉내 내 던질 수 있었다.   ‘스위퍼처럼 각이 큰 변화구도 문제없었지.’   물론 실제로 그렇게 던질 수는 없다.   너클볼 그립을 쥐고 160km/h의 강속구를 던지든, 슬라이더나 커브 궤적을 그리든.   물리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다시 차분하게 공을 손가락 끝으로 눌렀다.   너클볼 그립을 쥐자,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   ‘그래, 결국 너클볼이야. 100마일의 강속구도, 어떤 변화구도 나를 만족시킬 수 없어. 나는 너클볼만 있으면 돼.’   나는 던지던 공을 내려놓고, 불펜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상식을 벗어난 비현실적인 상황.   하지만 생생하게 느껴지는 심장 소리와 손가락 감각이 명백한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신이 내린 능력일까, 아니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외계인의 소행일까.   나는 떨리는 손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손톱 밑과 손가락 마디엔 굳은살이 흉측하게 박여 있었다.   4년간 너클볼을 던지기 위해 스스로를 던진 투수의 손이었다.   ‘아니면… 내가 바친 4년에 대한 하늘의 보답인가.’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것이 신의 축복이든, 악마의 유혹이든, 결국 이 힘은 내 손끝에 주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운드와 내 떨리는 두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생각.   ‘이 능력… 언제까지 내 안에 남아 있을까?’   언제 예고도 없이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비현실적인 능력이었다.   하루, 아니 단 1분 1초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이 순간이 너무나도 아까워 목이 타들어 갔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나의 공.   그리고 그 궤적 앞에서 허공에 배트를 휘두르는 타자들의 모습.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야구 가방을 챙겨 서둘러 낡은 자취방으로 향했다.   지금은 4월 초.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이다.   한국과 달리 5~6월이면 졸업식과 학기가 끝나는 미국 고등학교의 특성상, 이제 와서 고교 야구부에 입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2년제 대학 리그인가… 아니면 독립리그인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단 0.1초도 고려할 가치가 없는 선택지였다.   나의 너클볼은 그런 리그에서 정체될 무기가 아니었다.   ‘거기서 한 번 뛰면 7년은 뛰어야 해. 그렇다고 용병으로 나를 데려갈 구단이 있을 리도 없고.’   뭐 KBO에 들어가 너클볼로 리그를 씹어 먹는다고 한들, 언론의 평가엔 의문이 붙을 것이다.   ‘수준 낮은 리그라 통하는 도박성 구종이다.’‘메이저리그 빅리거들 앞에선 배팅볼에 불과하다.’   그런 모함을 들으며 7년을 썩어야 한다.   ‘그런 치욕스러운 평가를 들을 바에야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마운드 위에서 완성할 너클볼은 그 어떤 사람도 감히 토를 달 수 없는 최강의 구종이어야 했다.   ‘그래, 결국 증명할 무대는 단 하나, 메이저리그뿐이야. 나의 너클볼이 모든 구종의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해. 그러려면 무조건 가장 빠르게 상위 리그로 올라갈 수 있는 루트를 타야 한다.’   대학리그나 독립리그 바닥에서 느긋하게 몇 년씩 썩는다면, 너클볼에 대한 그런 평가는 똑같이 따라붙을 것이다.   애초에 이 능력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활동할 생각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너클볼로 상위 마이너리그를 거쳐 빅리그로 직행하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최우선인 목표였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 상태로 곧바로 마이너리그를 가는 건 불가능하지.’   2020년대에 들어서 MLB 30개 구단 전체가 공개 트라이아웃을 완전히 폐지했다.   이제 여러 유망주의 데이터 분석 시스템이 완비되면서, 검증되지 않은 일반인들을 모아놓고 테스트를 치르는 것이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MLB 신인 드래프트는 당연히 안 되고.’   고교 야구부에도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신인 드래프트 대상자로 지명 자체가 안 된다.   MLB 스카우터에게 직접 어필할 수도 있다.   공개 트라이아웃이 폐지된 것이지 구단 자체 비공개 트라이아웃은 가능하니까.   ‘문제는 스카우트에게 어필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야.’   그냥 일반인이 본인이 잘 던지는 영상을 보낸다 한들 그것을 볼 가능성도 작고, 설령 본다고 하더라도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방식을 굳이 쓸 필요는 없어. 그리고 이 루트는 왠지 나 좀 봐달라고 징징대는 느낌이라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내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구단이 나를 찾아오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루트.   ‘결국 독립리그밖에 없어.’   독립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곧바로 마이너리그로 갈 수 있다.   언제든 스카우트들이 상주하는 곳이기에 그곳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으로 독립리그 오픈 트라이아웃 일정을 검색했다.   ‘… 4월 말, 프런티어 리그 봄 통합 트라이아웃?’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한 달만 더 늦게 이 능력을 얻었더라면 독립리그도 들어가기 힘들 뻔했다.   물론 정규 오픈 트라이아웃이 아니더라도 구단에 부상자가 생기는 등의 일로 비공개 트라이아웃이 열리긴 한다.   ‘그래도 확실하게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커.’   이건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똑바로 내 이름을 포함한 프로필을 기재하고 신청 버튼을 눌렀다.   결제 완료 창이 뜨는 순간, 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흐흐, 앞으로가 기대되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