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프런티어 리그 트라이아웃(1)
2화 프런티어 리그 트라이아웃(1)
2화 프런티어 리그 트라이아웃(1) 드디어 트라이아웃 당일이 되었다. 내가 선택한 리그는 미국 독립리그 중에서도 가장 수준이 높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진 프런티어 리그(Frontier League)였다. MLB의 공식 파트너 리그이기에 빅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이 상시 주시하는 곳이다. 유망주들이 모여드는 이 무대에서 너클볼을 증명할 것이다. 트라이아웃을 신청하고 남은 기간에는 훈련을 진행했다. ‘염력이 있는데 무슨 훈련이 필요하냐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치밀한 대비가 필요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구속과 종속의 제어’였다. 염력으로 공의 속도를 제어하는 정밀한 감각을 익혀야 했다. 혹시라도 염력으로 속도 조절에 실수하여 100마일짜리 너클볼이 날아갈 수도 있다. 그런 비현실적인 데이터가 관측되는 순간 의심스러운 시선이 쏟아질 것이다. ‘너클볼을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이 염력을 완벽히 숨기는 것이 중요해.’ 가장 이상적인 너클볼의 구속은 65마일에서 75마일. 약 105km/h ~ 120km/h에 해당하는 구속이다. 거기에 공이 손에서 떠나 홈플레이트까지 날아가는 동안 공기 저항으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속도 감쇄까지 계산에 넣어야 했다. 초속과 종속의 현실적인 데이터를 내는 훈련. 이것은 상당한 정교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신체 훈련이었다. 야구 선수로서 신체 단련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염력을 얻었으니, 그에 맞는 신체를 만들어야 했다. 그동안 해오던 야구 선수의 훈련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투수는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파워를 쥐어짜 낸다. 그때 순발력을 담당하는 속근을 사용한다. 한순간에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이지.’ 상체 위주의 과도한 속근 훈련을 줄이고, 투구 폼의 균형과 지치지 않는 하체 근지구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내게 필요한 건 속근이 아니라, 근지구력을 올려줄 수 있는 지근이야.’ 순발력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대신, 120구, 130구를 던져도 버틸 수 있는 근지구력을 만드는 것. 안 그래도 팔 부하가 적은 너클볼에 지근 중심의 체력 훈련을 얹는다면, 나는 마운드 위에 오래 설 수 있다. ‘크크, 그래야 사람들에게 너클볼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지.’ 추가로 부상 방지를 위한 유연성 훈련까지 더하면 내구성도 더 좋아질 수 있다. ‘애초에 철강왕이었던 나지. 4년 동안 큰 부상 없이 많은 훈련량을 가졌으니.’ 물론 훈련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몇 주 지나지 않았다. 기존의 속근을 없애고 지근을 키우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뭐, 그래도 나한테 시간은 많아.’ 내 나이는 이제 겨우 만 18세. 앞으로 훈련할 시간은 차고 넘쳤고, 당장 오늘 트라이아웃에서 타자들을 상대하는 데는 지금의 체력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트라이아웃이 열리는 윈트러스트 필드에 들어섰다. 일리노이주 샴버그. 프런티어 리그 샴버그 부머스의 홈구장, 윈트러스트 필드 앞은 이른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트라이아웃 개장 시간은 오전 8시. 하지만 입구 앞에는 이미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참가자로 득실거렸다. 미국 대학 야구 디비전1에서 방출된 선수들. 마이너리그 루키 리그나 싱글 A에서 쫓겨난 선수들. ‘체격들이 장난 아니네.’ 키 190cm가 넘는 거구들이 수두룩했다. 그중에는 티셔츠가 터질 듯이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 우락부락한 거구들 사이에서, 나는 이온 음료를 홀짝이며 앉아 있었다. ‘내 키가 182cm. 일반인 기준으로는 큰 편이지만 투수 기준으로는 평균 이하긴 해.’ 불안한 마음은 없었다. 나는 손안에 쥐어진 야구공을 꽉 움켜쥐었다. 검지와 중지 끝으로 공을 지그시 눌렀다. 손끝에 선명하게 닿는 가죽의 감촉. 너클볼 그립을 쥐자 긴장되던 마음이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졌다. 너클볼을 던지는 순간, 공중에서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그 공의 모습이. ‘빨리 던지고 싶다.’ 프런티어 리그 트라이아웃.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합격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참가자들. ‘그래도 나는 자신 있어.’ 나는 사실상 치트 능력을 얻은 셈이다. 이 너클볼만 있으면 어떤 타자든 꼼짝없이 헛스윙할 수 밖에 없으니까. “다음! 참가 번호 47번, 강무백!” 등록 창구에서 진행 요원이 서류를 훑어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름하고 신분증 제시해 주세요.” 나는 여권을 꺼내 창구 위에 올려놓았다. 진행 요원은 여권에 적힌 이름과 사전 등록 명단을 대조하더니, 면책 동의서를 내밀었다. “확인됐습니다. 동의서 하단에 서명하고, 번호표 가슴에 차고 입장하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깔끔하게 서명을 마친 뒤 윈트러스트 필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훈련장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키와 몸무게를 쟀다. 측정 장비 위에서 나온 숫자를 확인한 진행요원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곧바로 웜업에 들어갔다. 잔디밭으로 이동해 몸을 풀면서 생각에 빠졌다. ‘곧바로 던질 준비를 하는 건가?’ 필드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자, 저만치 서 있던 스카우트가 서류를 훑어보며 참가 번호를 불렀다. “참가 번호 47번, 강무백!”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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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을 풀며 스카우트 앞으로 걸어갔다. 스카우트는 서류에 적힌 내 프로필이 뚫어져라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클볼? 구종란에 너클볼 하나만 적으셨네요?” “예, 맞습니다. 너클볼만 던집니다.” 내 단호한 대답에 스카우트는 순간 침묵에 빠졌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혹시 포심 패스트볼 최대 구속은 얼마나 나오죠? 여기 적힌 구속은 너클볼 구속 같은데요.” “아, 시속 87마일 정도 나옵니다.” 약 140km/h. 스카우트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대감이 없는 얼굴이었다. “네, 그럼 일단 15구 던져보세요.” 조금의 기대도 담겨있지 않는 실망스러운 목소리. 나는 아무렇지 않게 불펜 마운드에 올랐다. 불펜에는 포수 여럿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나를 포함해 투수 4명이 각 마운드에 올라와 있었다. 포수 뒤쪽으로는 각 팀 감독과 코치, 스카우트들이 빽빽하게 둘러서서 투구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공을 쥔 손을 글러브 속에 넣었다. 검지와 중지 끝을 공 가죽 위에 콕 찍어 눌렀다. 너클볼 그립. 그립을 잡는 순간, 손끝을 통해 공과 연결되는 느낌이 온몸을 훑었다. ‘좋아. 시작해 볼까?’ 와인드업은 하지 않았다. 그저 간결한 투구 폼. 다른 사람이 보면 건성으로 대충 던지는 듯한 동작이었다. ‘간결한 움직임만으로도 너클볼을 구사할 수 있지.’ 염력으로 공을 움직이기에 가능한 플레이.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전설적인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의 투구 폼을 보고 따라 한 것이다. ‘염력을 얻기 전에 너클볼을 던지려고 이것저것 여러 투구폼을 시도해 봤지.’ 염력을 얻기 전부터 이 투구 폼을 구사한 것은 아니다. 공에 속도도 잘 안 붙고 너클볼 무브먼트도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염력으로 던질 수 있는 지금 어떤 투구 폼으로든 던질 수 있어.’ 그렇게 선택한 투구 폼이 바로 팀 웨이크필드의 투구 폼이었다. 간결한 폼으로 던지기에 신체 부하도 적고 이후 수비할 때도 유리하다. 그렇게 내 손을 떠난 야구공. 공은 회전을 거의 하지 않고 날아갔다. 공 표면의 실밥 모양이 그대로 보이는 광경. “어, 어?” 공을 받으려던 포수가 당황했는지 미트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70마일의 느릿한 구속이지만 공중에서 나비처럼 흔들리며 날아갔다. 파악! “억?!” 불펜 포수는 미트를 제대로 대지 못했다. 가슴팍으로 꺾여 들어온 공은 포수의 보호구를 그대로 강타했다. “커헉!” 포수는 황급히 마스크를 벗고 헐떡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느린 너클볼이라고 해도 정통으로 맞으면 아프긴 하지.’ 고통스러워하는 포수를 보며 속으로 안타까워하던 사이, 포수가 겨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2구를 던졌다. 쉬익- 이번 공도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불펜 포수는 이번에도 미트를 허둥지둥 흔들었다. 이번엔 포수 뒤쪽으로 빠져 나간 공, 그대로 뒤로 흘러 펜스를 쾅 때렸다. “Holy Jesus….” 뒤에서 지켜보던 스카우트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포수도 뒤로 흘러 나간 공을 보면서 충격에 빠진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멍한 눈으로 펜스에 맞고 굴러가는 공을 바라보던 포수가 주춤거리며 공을 가지러 갔다. 그리고 3구째. 포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시 자세를 잡자, 나 역시 투구 준비를 마친 후 곧바로 공을 던졌다. 쉬익- 이번에도 공은 회전을 거의 하지 않고 날아갔다. 실밥이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정지된 채, 공중에서 두 번이나 꺾이는 궤적. 퍼억! “Damn!” 이번엔 포수가 몸을 갖다 대면서 날아온 공을 어떻게든 미트로 잡아냈다. 소리가 둔탁하게 불펜에 울려 퍼졌다. 이번엔 포구를 제대로 했음에도 포수의 손목이 덜덜 떨렸다. ‘트랙맨 회전수 한번 보고 싶네.’ 불펜 마운드 위에서 던지고 있는 나는 스크린을 보지 못하지만, 포수 뒤에 앉아 있는 감코진들과 스카우트들은 모두 보고 있을 것이다. 지금 그들이 모니터 숫자를 바라보고 있을 모습이 그려졌다. 너클볼의 평균 회전수는 약 100~250 RPM. 몇 주간, 이 회전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던질 수 있도록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다. ‘아예 회전이 없는 0 RPM을 던지는 건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니까.’ 타자나 스카우트들이 보기에 비현실적인 공처럼 보이지 않도록, 현실적인 회전수로 조종할 수 있게 훈련해 왔다. 딱 인간의 한계치에 걸쳐있는, 그러나 타자를 상대하기엔 충분한 너클볼 데이터. 그렇게 스카우트가 지시한 15구를 전부 던졌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풀며 유유히 마운드를 내려왔다. 내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불펜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포수는 손목을 거머쥔 채 넋이 나가 있었다. 불펜 포수에게는 살짝 미안한 감도 들었다. ‘가슴팍에 번호표가 붙어 있는 것을 보니까 포수도 나와 같은 트라이아웃 지원자 같았지.’ 트라이아웃에서 스카우트들에게 잘 보여야 할 포수가 연달아 포일(포수가 공을 빠뜨리는 실수)을 저질렀으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갈 터였다. ‘그래도 이건 너클볼이니까.’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궤적으로 날아가는 너클볼이다. 뒤에서 지켜보는 스카우트나 감독, 코치진도 그 정도는 감안해 줄 게 분명했다. 내 뒤에서 투구를 지켜보던 스카우트는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내 걱정은 조금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완벽한 궤적의 너클볼을 직접 봤는데, 1차에서 떨어질 일은 없지.’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너클볼을 보고도 라이브피칭을 안 시킬 스카우트는 없다. 실제 타자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도 무조건 1차 합격이다. ‘2차 테스트는 라이브피칭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