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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프런티어 리그 트라이아웃(2)

염력 쓰는 너클볼 투수가 되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3화 프런티어 리그 트라이아웃(2)

1차 불펜 피칭과 프리 배팅 일정이 모두 끝나자, 윈트러스트 필드 내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참가자들의 프로필과 투구 데이터가 적힌 서류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프런티어 리그 공식 스카우팅 디렉터를 비롯해 리그에 속한 16개 감독과 코치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곳에서 1차 테스트를 통과하고 내일 2차 테스트로 올라갈 합격자들을 선출한다.   선발 방식은 체계적이었다.   우선 프런티어 리그 스카우팅 디렉터가 데이터와 실제로 본 기량을 바탕으로 1차 합격자 명단을 선별한다.   그 후, 명단에 들지 못한 탈락 후보 중에서 단 한 구단의 감독이라도 “내일 2차 테스트에서 다시 보고 싶다”고 요청하면 합격 표를 얻는 구조였다.   스카우팅 디렉터가 1차로 선별한 합격자 명단을 차례로 발표했다.   발표가 마무리될 무렵, 좌석 한쪽에 앉아 있던 감독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 1차 불펜 피칭에서 너클볼 던졌던 선수는 선별하지 않았습니까?”   그 질문에 디렉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예. 아무래도 워낙 특수한 경우라 감독님들 의견을 직접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강무백. 1차 테스트에서 너클볼을 던진 투수입니다. 이 선수 라이브 피칭 보고 싶으신 감독님 계신가요?”   너클볼.   현대 야구에서 너클볼은 사실상 사장된 구종이었다.   100마일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무브먼트가 뛰어난 변종 변화구가 지배하는 시대다.   너클볼을 간혹 섞어 던지는 투수는 있어도, 오직 너클볼 하나만을 주력으로 던지는 전문 너클볼 투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야구 현장에서는 너클볼의 실전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더군다나 강무백 선수의 너클볼은 현대 야구에서 쓰이는 고속 너클볼도 아니었지. 전통적인 방식의 느린 너클볼이었어. 100마일이 쏟아지는 현대 야구판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디렉터가 1차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보류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너클볼 투수는 실전 검증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공을 받아낼 전문 포수까지 따로 마련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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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 구단 모두 너클볼 투수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탈락이다.’   하지만 디렉터의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디렉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의실 안에 있던 16개 구단 감독 전원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강무백. 그 선수 공은 2차 테스트에서 꼭 보고 싶습니다.”   한 감독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스카우팅 디렉터는 놀란 눈을 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강무백 선수는 1차 합격 처리하겠습니다. 샴버그 부머스 감독님, 혹시 팀에 너클볼을 받아본 포수가 있습니까? 내일 강무백 선수의 공을 받아줄 포수가 필요한데요.”   샴버그 부머스의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팀 주전 포수를 데려오겠습니다. 너클볼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포구 실력만큼은 리그 최정상급입니다.”   “예,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   다음 날.   프런티어 리그 트라이아웃 2일 차.   1차 테스트를 당당히 통과한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윈트러스트 필드에 다시 섰다.   “참가자 47번 강무백! 들어오세요!”   진행 요원의 안내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나는 지체 없이 필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제 섰던 불펜 마운드가 아닌, 메인 필드의 마운드 위로 발을 내디뎠다.   타석 쪽을 바라보자 험악한 인상의 흑인 거구 한 명이 들어서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소곤거리며 나누던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제이크 윌리엄스.   이번 트라이아웃 참가자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타자였다.   키 195cm의 압도적인 거구에, 마이너리그 싱글 A에서 무려 15개의 홈런을 터뜨렸던 거포.   다만 지난해 성적 부진 이유로 구단에서 방출된 후, 이 트라이아웃에 지원했다고 했었다.   타석에 들어선 제이크는 가볍게 몸을 풀며 묵직한 배트를 빙빙 돌렸다.   그 모습만으로도 타석이 꽉 차는 듯한 중압감이 밀려왔다.   나는 흙을 스파이크 끝으로 툭툭 찼다.   마운드 고르기를 마치고 타석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딱히 긴장되지는 않았다.   ‘설레는 것에 가깝지. 저런 타자를 상대로 내 완벽한 너클볼을 선보일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동요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글러브 안에 손을 가만히 넣었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 끝을 공 가죽 위에 지그시 눌러 너클볼 그립을 바짝 쥐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손끝에 선명하게 닿는 야구공의 감촉.   공과 연결되는 특유의 감각을 느끼며 나는 다시 타석의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자연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니, 설렐 필요도 없어. 어차피 그래봤자 싱글 A 수준의 타자잖아. 나는 조만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너클볼을 던질 건데, 겨우 이 정도 타자 상대로 설레다니. 말도 안 되지.’   나는 가볍게 투구 자세를 취한 후 공을 던졌다.   성의 없어 보일 정도로 간결한 폼.   그러나 그런 폼에서 나온 공의 무브먼트는 결코 간결하지 않았다.   나비처럼 공중을 떠다니며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가는 공.   쉬익-   타석의 제이크가 호쾌하게 허리를 회전시키며 배트를 휘둘렀다.   휘익!   묵직한 바람 소리가 필드를 갈랐다.   하지만 제이크가 배트를 휘두르는 바로 그 순간, 날아가던 공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아래로 떨어졌다.   제이크의 배트는 허공을 갈랐고, 떨어진 공은 바닥 흙을 튕긴 뒤 포수의 미트에 막혀 멈춰 섰다.   “스트라이크!”   제이크는 배트를 쥔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내가 너클볼을 던진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었겠지.’   독립리그 트라이아웃에 모인 선수들 사이에서 소문이 안 났을 리 없었다.   한국에서 건너온 동양인 투수가 너클볼 하나만 던진다는 사실은 그들 사이에서 좋은 이야깃거리였을 테니까.   당연히 내 구종이 너클볼이라는 걸 알고 타석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내 너클볼의 궤적이 좋다는 뜻이기도 해.’   나는 너클볼이 그린 아름다운 궤적을 눈에 담으며 가만히 여운에 빠졌다.   ‘이거지, 너클볼은 타자의 헛스윙이 있어야 그 맛이 나.’   타자가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 허공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장면.   그 절묘한 순간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이상적인 광경이었다.   제이크는 땀을 닦아내며 무서운 기세로 나를 노려보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는지, 그는 배트를 다잡고 타석 안쪽으로 바짝 붙어 섰다.   나는 다시 투구 자세를 잡고 손끝으로 너클볼 그립을 쥐었다.   2구.   쉬익-   내 손끝을 떠난 공이 다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타자의 몸쪽 높게 날아가는 코스.   날개가 달린 듯이 허공을 유영하는 너클볼이었지만, 날아가는 궤적만 보면 확연한 스트라이크 존 밖이었다.   제이크 역시 공이 빠졌음을 직감하고 배트를 거두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 순간.   존 밖으로 빠져나갈 것 같던 공이 거짓말처럼 떨어지면서 스트라이크 존 안쪽으로 들어왔다.   퍼억!   포수 미트에 강하게 부딪힌 뒤 땅으로 떨어진 공.   “스트라이크 투!”   “What?!”   제이크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억울한 표정으로 심판을 돌아보았다.   “이게 스트라이크라고요?! 몸쪽 위로 빠지는 볼이었잖아요!”   주심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들어왔어. 공이 흔들리긴 했지만, 마지막에 분명히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 너클볼은 궤적이 하도 불규칙적이라 스트라이크 여부를 판정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이번 공은 마지막 순간 완벽하게 존 안으로 파고든 공이었다.   나는 마운드 위에서 씨익 웃었다.   ‘이거야, 내 너클볼은 타자가 절대 칠 수 없는 마구라고.’   물리적 한계 내에서, 타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궤적을 조작하는 마구.   타자가 배트를 휘두를 것 같으면 존 밖으로 빼서 헛스윙을 유도하거나 정타를 피할 수 있고, 휘두르지 않고 참아내면 존 안으로 밀어 넣으면 그만이다.   ‘말 그대로 응수타진의 구종이야.’   사실 이번 공도 공이 흔들려서 그렇지, 스트라이크 존을 그렇게 많이 벗어난 궤적은 아니었다.   다만 공이 타자의 머리 쪽을 향해 꺾이며 날아갔기에, 제이크가 깜짝 놀라 공을 피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한 것뿐이었다.   보더라인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며 날아가다가 존 안으로 밀어 넣거나, 반대로 존 밖으로 슬쩍 빼버리거나.   모든 것은 내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영역이었다.   볼카운트 0볼 2스트라이크.   제이크는 볼카운트가 불리한 채 타석에 서서 배트를 꽉 쥐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하는 제이크.   나는 투구 자세를 잡고 망설임 없이 3구를 던졌다.   쉬익-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무회전의 공.   이번 공은 중앙 낮게 들어왔다.   조바심이 난 제이크는 정신없이 배트를 휘둘렀고, 공은 바깥쪽 아래로 떨어졌다.   허공을 가른 방망이의 무거운 회전력을 주체하지 못한 제이크는, 결국 중심을 완전히 잃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   샴버그 부머스 감독 릭 헤르난데스는 강무백의 투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슬쩍 트랙맨 모니터로 시선을 옮겨 데이터를 확인했다.   ‘회전수가 120rpm이라… 이거 심상치 않은데?’   기본적으로 너클볼의 회전수는 150rpm에서 300rpm 수준이다.   이 수치조차 너클볼 하나로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R.A. 디키 정도가 되어야 안정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런데 그보다도 낮게 형성되어 있다는 건….’   너클볼의 완성도 하나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강무백은 현재 30구 가까이 던지고 있었지만, 단 하나의 실투조차 내주지 않았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 역시 단 하나의 정타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흠, 이 정도면 2라운드 정도에 뽑히려나?’   강무백이 마운드 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래프트 1순위로 무조건 지명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독립리그 팀에게 트라이아웃은 한 해 성적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무대야.’   메이저리그처럼 유망주를 뽑는 신인 드래프트와는 다르다.   즉전감 선수를 뽑아야 하는 트라이아웃이기에 이곳에서 어떤 선수를 뽑느냐에 따라 팀의 한 해 농사가 결정된다.   ‘결국 너클볼 투수처럼 리스크가 높은 선수보다는, 확실하게 검증된 선수를 지명할 확률이 높아.’   심지어 강무백은 정식 야구 경력이 하나도 없었다.   ‘미국 고교 야구부조차 들어가지 못했어. 아무리 공이 좋아도 무작정 첫 번째로 지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물론 어느 구단에도 지명받지 못하고 떨어질 일은 없을 터였다.   아무리 리스크가 큰 너클볼 투수라고 해도, 30구 가까이 던지는 동안 단 하나의 정타도 허용하지 않는 성과는 대단했으니까.   ‘다만 1라운드 지명은 다른 이야기야. 만약 1라운드 카드로 너클볼 투수를 뽑았다가 실전에서 쓰지 못한다면 팀에 엄청난 타격이 오니까.’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손에 쥔 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문제는 쓸 만한 지원자 자체가 적다는 거야. 전체적인 수준이 예년 평균보다 떨어지는데….’   물론 눈에 띄는 선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구는 엉망이지만 100마일을 던지는 강속구 투수도 있었고, 다른 툴은 아쉽지만, 파워 툴만큼은 강한 타자도 있었다.   여기에 제이크 윌리엄스처럼 마이너리그 경력이 검증된 확실한 자원도 존재했다.   하지만 전년도 우승 팀 샴버그 부머스의 감독인 릭 헤르난데스는 마음 놓고 웃을 수 없었다.   ‘전년도에 우승한 탓에, 우리 구단의 지명 순서가 맨 마지막이지.’   프런티어 리그가 주최하는 트라이아웃은 드래프트 방식으로 선수를 지명한다.   전년도 성적의 역순으로 지명권이 행사되며, 각 팀은 최소 2명 이상의 선수를 의무적으로 지명해야 했다.   ‘결국 검증된 자원들은 앞 순번에서 다 빠져나갈 거다. 우리 순번까지 차례가 돌아올 리가 없지.’   1순위 매물들이 전부 빠져나가고 나면, 결국 그다음 순위의 선수들을 지명해야 한다.   ‘강무백… 이 선수를 2순위 매물로 봐야 하나? 내 감각으로는 1.5순위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1라운드 지명권을 너클볼 투수에게 소비해야 한다는 점은 찜찜함을 남겼다.   ‘만약 전담 포수 문제나 포구 이슈 때문에 실전에서 쓰지 못한다면? 트라이아웃 지원자들보다 한 차원 높은 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공이 통하지 않는다면?’   너클볼 투수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리스크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두 손을 바짝 쥐었다.   ‘제발, 한 명만 남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