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프런티어 리그 트라이아웃(3)
4화 프런티어 리그 트라이아웃(3)
4화 프런티어 리그 트라이아웃(3)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불안한 마음에 두 손을 꽉 쥐었다. ‘제발, 쓸 만한 선수 한 명만 남아 줘!’ “감독님, 회의실로 가시죠.” 어느새 2차 테스트가 끝났다. 수석코치가 회의실로 가야 한다고 재촉하자,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무거운 엉덩이를 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2차 테스트가 모두 끝난 뒤, 프런티어 리그 16개 구단의 감독들과 코치진이 회의실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테이블 위에는 참가자들의 최종 데이터가 정리된 서류가 놓였다. 잠시의 회의 시간이 지나가고, 곧바로 본격적인 드래프트가 시작되었다. “저희는 마이클 밀러 지명하겠습니다.” 드래프트가 시작하자마자 첫 번째 지명권이 행사되었다. 지명된 인물은 트라이아웃에서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진 강속구 투수였다. 제구력과 변화구에는 의문 부호가 붙어 있었지만, 독립리그 수준에서는 압도적인 구속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1라운드 전체 1순위 지명이 유력했던 매물이었다. “저희는 제이크 윌리엄스 지명하겠습니다.” 뒤이어 마이너리그 싱글 A에서 15홈런을 터뜨렸던 제이크 윌리엄스의 이름까지 불렸다. 강무백을 상대로는 처참하게 무너졌지만, 그 이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기에 고평가받았다. 앞에서 점점 알짜배기 자원들이 가차 없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초조함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거 안 좋은데.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어.’ 앞 순번 구단들이 남은 상위권 매물들을 싹쓸이해 갔다. 전년도 우승 팀인 샴버그 부머스를 제외하고 어느덧 1라운드 지명이 전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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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제 샴버그 부머스, 지명해 주세요.” 총괄 디렉터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명단을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뒤져봐도, 당장 실전에 투입할 1순위 매물은 이미 깡그리 팔려 나가고 없었다. ‘FUCK! 전년도 1등을 했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좆같은 드래프트 순번 같으니라고.’ 제한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결심한 듯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샴버그 부머스 지명하겠습니다. 47번 강무백.” 1라운드 카드로 너클볼 투수라는 시한폭탄을 지명해 버린 것이다. 지명을 마친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옆에 앉아 있던 수석코치 역시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강무백이 오늘 보여준 만큼만 해주면 돼. 포수는… 어떻게든 합을 맞춰서 훈련시켜야지.’ 사실 독립리그 수준에서 그 수준 높은 너클볼을 완벽히 포구할 포수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늘 라이브 피칭에서 강무백의 공을 받았던 주전 포수 콜튼 번스조차 간신히 블로킹만 해낼 뿐, 몇 번이나 공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놓치지 않았던가. 결국 최대한 빨리 배터리 호흡을 맞추도록 미친 듯이 훈련을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스프링 캠프 때 결과를 봐야지.’ 독립리그 로스터의 최대 정원은 25명. 이번 스프링 캠프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지체 없이 로스터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다. ‘1라운드에 지명한 선수를 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어. 방법은 하나뿐이야. 최선을 다해서 굴려보는 수밖에.’ *** 샴버그 부머스의 스프링 캠프를 하루 앞둔 날 저녁, 나는 자취방 아파트에서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어머니와 통화 중이었다. [그게 뭔 소리니? 독립리그? 프런티어 리그?] 스마트폰 너머로 어머니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아니, 그러니까. 프런티어 리그라고 야구 리그가 있어요. 거기 샴버그 부머스라는 팀하고 계약했다고요.” [그… 그게 네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거니? 부모님 동의서 같은 거 써야 하는 거 아니니?] “여기서 만 18세면 엄연히 성인이에요. 혼자서 다 계약할 수 있어요.” [그, 그렇구나… 그러면 이제 진짜 야구 선수로 뛰는 거니?]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직은 아니에요. 스프링 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최종 25인 로스터에 들어야 해요. 그땐 진짜 야구 선수가 되는 거죠.” [엄마는 잘 모르겠구나. 미국 고등학교 야구부도 못 들어갔던 네가 야구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게 통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반대쪽 귀로 바꿔 들었다. “아니, 어머니. 너클볼이라니까요? 제가 저번에 본가에서 밥 먹으면서 설명해 드렸잖아요. 너클볼이 얼마나 대단한….” [그, 그래그래. 맞지. 그때 네가 3시간 동안이나 떠들었으니 똑똑히 알고 있지. 그래서 괜찮다는 거지? 졸업식은 어떡하고?] 졸업식. 미국 고등학교는 보통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졸업식을 진행한다. 일단 내가 독립리그 구단과 계약을 마쳤으니, 최종 로스터에 들기만 하면 이후 수업 참석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독립리그라도 엄연히 공식적인 직업 활동이라 공결 처리가 되지. 이건 저번에 담임 선생님과 이미 상담해서 다 처리해 둔 일이야.’ 그래도 졸업식에는 꼭 참석하고 싶었다. 고교 야구부에 들어가지 못해 학교생활에 딱히 좋은 기억이 남은 건 아니지만, 평생 단 한 번뿐인 고등학교 졸업식이었으니까. “가야죠. 구단에서도 졸업식 날에는 보내준다고 들었어요.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오실 거죠?” [그래야지. 네 아빠도 미리 휴가를 내뒀으니 같이 갈 수 있을 거다] “네, 알겠어요. 그러면 졸업식 때 봬요.” 전화를 끊고 화면을 껐다. ‘졸업식이라… 뭐, 지금 졸업식이 중요한 게 아니긴 하지.’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스프링 캠프다. 당장 내일부터 본격적인 리그 개막을 대비해 단체 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여기서 무조건 잘해 보여야 해. 25인 로스터 안에 못 들면 그 즉시 방출이니까.’ 마이너리그나 프로 리그의 경우 로스터에 들지 못해도 방출당하지 않고 하위 리그로 강등되지만, 독립리그는 가차 없이 곧바로 방출이다. ‘뭐, 사실 딱히 걱정될 건 없지. 내 너클볼이 통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크크.’ 다음 날. 샴버그 부머스의 스프링 캠프 첫날이 밝았다. 선수들이 하나둘씩 구장 라커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미리 도착하자마자 곧장 라커룸 안으로 들어섰다. 라커룸 한쪽에 적혀 있는 내 이름. M. KANG. 라커 안을 들여다보니 구단에서 지급한 네이비색 훈련용 셔츠와 바지가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훈련복 색이 왜 이래.’ 뭔가 군복을 연상시키는 칙칙한 색감.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새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주위를 둘러보자, 라커룸 내부 분위기는 확연히 둘로 나뉘어 있었다. 지난해부터 구단에 남아 있던 기존 선수들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저래 보여도 속마음이 아주 편하진 않겠지. 저 친구들도 결국 25인 로스터 안에 들어야 살아남을 테니까.’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나처럼 이번 트라이아웃을 통해 새롭게 들어온 신입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색하고 묘한 분위기 속에서, 인원이 모두 모이자 한 남자가 라커룸 문을 쾅 열고 들어왔다. “헤이! 다들 반가워. 익숙한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네. 나는 선수단 운영 매니저 샘 홀든이야. 그냥 편하게 샘이라고 불러.”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백인 남자였다. “곧 감독님 오실 거야. 감독님 오셔서 인사 나누고 나면 내가 구단 시설 안내를 진행할 거다. 기존에 있던 선수들은 안내 들을 필요 없이 바로 운동장으로 나가면 되고.” 샘 홀든 매니저는 구단 운영 방식과 기본 수칙 등 선수들이 알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샘 매니저의 짧은 안내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라커룸 문이 다시 열렸다. 문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60대 중년 백인 남자였다. ‘계약서 쓸 때 봤었지. 샴버그 부머스의 릭 헤르난데스 감독.’ 그가 들어서자 어수선한 라커룸 내부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전원 집중.” 감독의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라커룸 안에 울려 퍼졌다. “우선 부머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기까지 오느라 다들 고생 많았다. 그런데 아직 기뻐하긴 이른 거 다들 알고 있지? 지금 너희가 입고 있는 건 옷 그대로 훈련복이다. 구단 정식 유니폼이 아니라는 소리지. 앞으로 2주 동안 임시로 입는 연습복일 뿐이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라커룸 벽면에 붙은 선수 명단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여기 서른두 명이 모였다. 하지만 개막전 날 이 라커룸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사람은 딱 스물다섯 명뿐이다. 나머지 일곱 명은 가방 싸서 군말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눈빛과 말투에는 조금의 온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프링 캠프 기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증명해라.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란 말이다. 자, 첫 단체 훈련은 9시 15분이다. 남은 시간 동안은 샘 매니저가 안내해 줄 거다. 이상.” 릭 헤르난데스 감독이 라커룸을 나가자,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샘 홀든 매니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자, 오늘 불펜 투구 순서랑 라이브 배팅 조 편성표는 벽에 붙은 거 확인하면 되고, 기존에 있던 선수들은 바로 훈련장 가서 워밍업 미리 해. 새로 온 선수들은 날 따라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샘 홀든 매니저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구단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여러 시설을 안내해 주었다. 선수들의 몸 관리를 책임지는 트레이닝 룸과 식당, 신체 단련을 할 수 있는 웨이트 룸, 그리고 세탁실 등등. 그렇게 구단 내부 안내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 스프링 캠프가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샴버그 부머스의 감독 릭 헤르난데스가 회의실로 들어서자, 코치진과 데이터 분석관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이 중앙 상석에 앉자마자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스프링 캠프를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로스터의 윤곽이 슬슬 잡혀가는데, 우선 훈련보고부터 진행하시죠.” 릭 헤르난데스 감독의 지시에 각 파트 코치가 준비해 온 선수들의 훈련 데이터를 차례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이어 데이터 분석관들이 일주일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상세한 보고를 덧붙였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제출된 서류를 훑어보고 내용을 신중히 들으며 향후 팀 운영 방향을 머릿속으로 그려 나갔다. “자, 그러면 타자 쪽 보고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은 투수진인데… 우선 제일 먼저 강무백 선수부터 체크해 보고 싶군요.” 릭 헤르난데스 감독이 강무백의 이름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투수코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