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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프런티어 리그 시범 경기(1)

염력 쓰는 너클볼 투수가 되었다 — novelpia.com · All chapters

5화 프런티어 리그 시범 경기(1)

5화 프런티어 리그 시범 경기(1)   “자, 그럼 타자 쪽 보고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은 투수진인데… 우선 제일 먼저 강무백 선수부터 체크해 보고 싶군요.”   릭 헤르난데스 감독이 강무백의 이름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투수코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피칭 데이터는 아주 훌륭합니다. 라이브 피칭에서도 타자들이 전혀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모습이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제출해 드린 투구 데이터를 보시면, 회전수가 100rpm대에서 기가 막히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실투를 단 한 번도 구사하지 않았습니다.”   너클볼.   너클볼이 지닌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 중 하나는 바로 실투의 위험성이었다.   공에 회전을 완전히 줄여 던지는 것의 난도가 워낙 높다 보니, 손끝에서 미세한 실수라도 나오면 곧바로 회전이 먹어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회전이 먹힌 느린 공은 타자가 가장 치기 좋은 배팅볼로 전락하고 만다.   ‘실투를 전혀 던지지 않는 너클볼 투수라니. 이 세상에 그런 투수는 존재하지 않아.’   야구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전설적인 너클볼 투수를 꼽으라면 세 명이 있다.   필 니크로, 팀 웨이크필드, 그리고 R.A. 디키.   이 위대한 전설들조차 너클볼을 던질 때 수많은 실투를 범하곤 했다.   그저 실투가 나오는 빈도가 남들보다 현저히 적었기에 리그를 지배하는 뛰어난 투수로 평가받았다.   ‘그 관점에서 봤을 때 일주일 내내 실투가 제로인 강무백의 투구는 가히 독보적인 평가를 받을 만해.’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마운드 위 강무백의 투구 모습을 떠올렸다.   ‘투구 폼부터가 심상치 않단 말이지. 전설적인 팀 웨이크필드를 연상시키는 아주 간결한 폼.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대충 던진다고 느껴질 정도로, 극도로 절제된 동작이다.’   그런 간결한 폼 덕분에 투구 후 수비 동작으로의 전환도 완벽했다.   투구 후 밸런스가 전혀 무너지지 않다 보니 수비 데이터 역시 대단히 훌륭하게 측정되고 있었다.   ‘너클볼은 특성상 땅볼 타구가 많이 나오는 구종이야. 투수의 자체 수비 실력이 좋아서 나쁠 건 전혀 없지.’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나직하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투수코치와 분석관으로부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보고를 받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깊은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제는… 역시 포수야. 일주일째 주전 포수인 콜튼 번스와 호흡을 맞추게 하고 있지만, 포구 문제는 전혀 개선될 기미가 안 보여.’   릭 헤르난데스 감독이 미간을 팍 찌푸린 채 고민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 회의 석상에 앉아 있던 배터리 코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감독님. 제가 강무백 선수에 대해 추가로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배터리 코치는 잠깐 머뭇거리며 자료를 정리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이게 어제 강무백 선수가 던진 투구 데이터입니다. 여기서 포구 데이터를 한 번 유심히 봐주십시오.”   그가 모니터 화면에 띄운 데이터에는 강무백이 어제 하루 동안 던졌던 투구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데이터 수집 기간이 하루 정도밖에 되지 않긴 합니다만, 이 데이터만 놓고 보면 포구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제시된 보고서를 뚫어져라 살피더니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데이터는… 코치 말이 맞아. 분명히 개선됐어! 포일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포구 안정감도 급격히 올라갔어.’   릭 헤르난데스 감독의 어두웠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단 하루의 일시적인 수치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눈에 보이는 확실한 개선 지표가 나타났다는 점이 중요해. 이 정도 포구 수치만 유지해 준다면 당장 실전에서도 무리 없이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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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일단 조금 더 지켜봅시다. 강무백과 콜튼 번스의 배터리 호흡이 어디까지 더 개선될 수 있을지.”   ***   나는 불펜 마운드에 서서 포수 미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포수석에는 20대 초반의 젊은 흑인 남자가 거친 숨을 내쉬며 포수 마스크를 고쳐 쓰고 있었다.   콜튼 번스.   독립리그 샴버그 부머스의 주전 포수로, 요즘 내 너클볼을 어떻게든 잡아보겠다고 매일 남아 추가 훈련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헤이, 캉! 어때? 나 좀 나아진 것 같지 않아?”   그가 허벅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 나에게 공을 던져 돌려주며 물었다.   “괜찮아졌네. 조금만 더 좋아지면 곧바로 실전에서 뛸 수 있겠는걸?”   물론 100% 거짓말이다.   콜튼 번스의 포구 능력은 일주일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애초에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뛰고 있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포수들조차 너클볼을 잡는 데 엄청난 애를 먹는다.   그런 마구 같은 공을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는 포수가 겨우 일주일 훈련했다고 포구 실력이 개선되는 건 불가능했다.   ‘실제로 개선되고 있는 건 콜튼 번스가 아니라 나지.’   사람 포수를 앉혀두고 공을 던지는 건 나 역시 경험이 적었기에 적응할 기간이 필요했다.   타자가 스윙하는 홈플레이트 앞까지는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타자의 방망이를 지나간 바로 그 찰나의 순간 포수 미트 안으로 자연스럽게 파고들도록 조종하는 것이다.   즉, 요즘 콜튼 번스가 공을 잘 잡아내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전적으로 내가 염력으로 공을 유연하게 조종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이 이미 타자 앞을 지나가서 절대 칠 수 없는 그 찰나의 순간에, 포수 미트 위치로 살포시 넣어주는 거지.’   물론 포수 미트의 위치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공이 미트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게 지나치게 부자연스럽다면 어쩔 수 없이 놓치게 내버려둔다.   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포수가 잡기 편해지도록 궤적을 수정할 수 있었다.   ‘물론 너클볼을 100구 던져서 100구를 다 포구해 내면 그건 그것대로 말도 안 되잖아?’   그렇기에 훈련에서든 라이브 피칭에서든, 포수가 공을 뒤로 빠뜨리는 실책 장면을 일부러 몇 번씩 연출했다.   ‘포수 스탯이 깎이겠지만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내게 양심이 철철 넘쳐흐르는 성인군자 같은 면모가 있었더라면, 애초에 염력으로 야구를 한다는 이런 비겁한 짓 자체를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근데 난 양심이 별로 없는걸? 염력을 대체 어떻게 얻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직 너클볼 그립을 쥐었을 때만 적용되는 염력. 이건 대놓고 너클볼 던질 때 쓰라고 있는 능력이잖아.’   만약 이게 신이 내린 능력이라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타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신의 뜻일 터였다.   어쩌면 신조차 내 아름다운 너클볼 궤적을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한테 이런 염력을 선사했겠지.’   … 아님, 말고.   어쩌면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내 몸에 갑자기 발현된 돌연변이 같은 능력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능력을 잘 써먹기만 하면 된다. 남들 눈에 절대 들키지 않게 영리하게 쓰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러기 위해 콜튼 번스 포수와 매일 이렇게 군말 없이 추가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샴버그 부머스의 스프링 캠프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독립리그의 스프링 캠프는 길지 않다.   2주가 채 안 되는, 대략 10일에서 12일 남짓한 짧은 기간이다.   이 시간 동안 치르는 3경기에서 5경기 정도의 시범 경기.   그 결과에 따라 최종 25인 로스터의 성패가 가려진다.   ‘그 결과에 따라 진짜 명단이 갈리지.’   샴버그 부머스의 감독 릭 헤르난데스는 마지막 시범 경기를 앞두고, 깊은 고민에 잠겨 있었다.   어제 배터리 코치가 가져온 보고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 감독님, 강무백과 콜튼 번스. 이제 실전에서 바로 써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실시했던 구단 자체 청백전.   강무백과 콜튼 번스 배터리를 마운드에 올렸던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단 한 타자도 출루하지 못했어.’   팀 내 내로라하는 샴버그 부머스의 주전 타자들이 단 한 명도 1루를 밟지 못한 것이다.   물론 9이닝 전체를 전담한 건 아니고 한 타자씩만 상대한 라이브 피칭성이었지만, 마운드 위 강무백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압도적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번 시범 경기에 강무백을 내보낼까?’   이미 강무백을 방출 명단에 넣는다는 선택지는 머릿속에서 삭제된 지 오래였다.   포수와의 호흡 문제 때문에 그동안 시범 경기에 아껴두고 있었을 뿐, 그가 선보인 너클볼의 완성도는 감히 독립리그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트라이아웃 때 주운 게 폭탄이 아니라 대박 복권이었을 줄이야. 흐흐.’   릭 헤르난데스 감독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선수.   그게 바로 강무백이었다.   ‘이왕이면 끝까지 패를 숨겼다가 정규 리그 개막전 때 깜짝 카드로 내보내고 싶은데.’   개막전 상대 팀 감독이 어이없어할 표정을 생각하면 벌써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파격적인 선택을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연습과 실전은 엄연히 다르지. 자체 청백전을 씹어 먹다가도 실전판에만 서면 처참하게 무너지는 녀석들을 내가 한두 번 본 게 아니야.’   결국 마지막 시범 경기에 내보내 실전 감각을 끌어올려 주는 것이 감독으로서 올바른 판단이었다.   다음 날.   스프링 캠프의 피날레를 장식할 마지막 시범 경기 당일.   샴버그 부머스의 선발 투수는 강무백이었다.   상대는 졸리엣 슬래머스.   샴버그 부머스와 마찬가지로 일리노이주에 있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구단이었다.   ‘연고지가 겹치다 보니 평소에도 라이벌 의식이 꽤 팽팽한 녀석들이지.’   그런 라이벌을 상대로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망설임 없이 강무백을 선발로 내세웠다.   사실 독립리그 시범 경기에서 선발 투수라는 타이틀은 큰 의미가 없다.   한 투수에게 많은 투구 수를 맡기지 않기 때문에, 그저 가장 먼저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일 뿐이다.   ‘나 역시 강무백이 길게 던지게 할 생각은 없어. 몇 이닝 정도 던지게 해보고, 실전 감각이 괜찮다 싶으면 곧바로 마운드에서 내릴 거니까.’   ***   첫 실전.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그 첫 순간 앞에서 손발이 긴장으로 단단히 굳어버리기 마련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쓰벌, 다리가 왜 이렇게 떨리는 거야.’   나는 미국 고교 야구부에도 들어가지 못한, 사실상 실패한 선수였다.   제대로 된 관중과 심판이 갖춰진 실전 경기를 치러본 적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중학 리그에선 많이 뛰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까마득한 중학 리그 얘기니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 시절 기억은 가물거릴 뿐이었다.   나는 떨리는 다리를 다잡고 마운드 위에 서서, 포수석을 향해 공을 하나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포수 콜튼 번스가 던져준 야구공을 받아 들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글러브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손톱 끝으로 공의 가죽을 콕 찍어 누르며 너클볼 그립을 잡았다.   두근거리던 심장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내렸다.   ‘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차분해지는 감각을 음미하며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시범 경기.   그것도 독립리그에서 치러지는 한낱 시범 경기일 뿐이다.   관중석엔 사람도 거의 없어 한산하기 그지없는 무대.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전방의 타석을 바라보았다.   ‘그래, 어차피 시범 경기일 뿐이야. 내 진짜 본무대는 메이저리그라고, 겨우 이런 독립리그 마운드에서 긴장하는 건 꼴사나울 뿐이야.’   나는 숨을 깊게 내쉬며 가볍게 투구 자세를 취했다.   “플레이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