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프런티어 리그 시범 경기(2)
6화 프런티어 리그 시범 경기(2)
6화 프런티어 리그 시범 경기(2)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전방의 타석을 바라보았다. ‘그래, 어차피 시범 경기일 뿐이야. 내 진짜 본무대는 메이저리그라고, 겨우 이런 독립리그 마운드에서 긴장하는 건 꼴사나울 뿐이야.’ 나는 숨을 깊게 내쉬며 가볍게 투구 자세를 취했다. “플레이 볼!” 심판의 경기 시작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포수석에 앉은 콜튼 번스가 곧바로 사인을 냈다. 당연하게도 너클볼 사인이었다. 미트는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에 툭 놓여있었다. ‘어차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너클볼인데, 포수가 코스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휘익- 가볍게 팔을 뿌렸다. 내 손끝을 떠난 공이 허공을 유랑하듯 날아갔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도 어이없는 궤적에 당황했는지 움찔거리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힘껏 배트를 휘두르려고 했다. ‘지금이다!’ 타자가 허리를 회전시키며 방망이를 내려는 순간, 나는 염력으로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가도록 조종했다. 급격한 무브먼트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불규칙적으로 스트라이크 존 밖으로 나가는 공. 타자는 허공을 향해 시원하게 헛스윙을 갈겼다.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헛스윙을 한 타자는 다급한 표정으로 타석에서 벗어났다. “타임!” 재빨리 타임을 요청한 타자가 억울하다는 듯 본인의 팀 덕아웃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흘낏 상대 덕아웃 쪽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코치진과 선수들 모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크크, 이게 바로 너클볼이지.’ 실전 마운드에서 처음으로 내지른 공이었다. 지금껏 머릿속으로 수없이 상상만 해왔던 바로 그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방금 그렸던 너클볼의 궤적을 회상하며 음미하던 중, 타임이 끝나고 타자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타임을 아무리 외쳐봐라. 그렇다고 너클볼을 칠 수 있을지.’ 나는 투구 자세를 잡자마자 지체 없이 공을 던졌다. 쉬익- 나의 빠른 투구 템포에 또다시 당황한 타자가 허둥지둥 배트를 휘둘렀다. ‘휘두르면 또 공을 치우면 그만이지.’ 이번에도 배트는 허공만 갈랐다. 애초에 익숙하지 않은 70마일대 구속이라 타이밍 맞추기도 힘든데, 눈앞에서 궤적까지 불규칙적으로 휘어지니 타자로서는 미칠 노릇일 터였다. 포수 콜튼 번스에게 공을 전달받자마자 나는 곧바로 다음 투구 준비를 마쳤다. 타자의 타격 루틴이 끝나고 엉거주춤 자세를 잡기 무섭게 또다시 빠르게 던졌다. 쉬익- 두 번이나 속은 타자는 이번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래? 안 휘둘러? 그럼 존 안에 집어넣으면 그만이지.’ 내 손을 떠난 공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춤추며 날아가더니, 마지막 순간 스트라이크 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첫 타자를 깔끔하게 삼구 삼진으로 잡아내었다. 너클볼로 상대 타자의 삼진을 잡아내는 쾌감에 전율이 흘렀다.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캬, 이거거든.’ 나는 뒤이어 나온 두 명의 타자도 땅볼 두 개로 가볍게 잡아내며 1회 초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덕아웃으로 들어가며 글러브를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너클볼이 스위퍼처럼 각이 크지는 않아서 어떻게든 배트로 맞히려면 맞힐 수는 있네.’ 내가 조종해서 배트를 피해도 결국 그 궤적의 각이 크진 않다. 어떻게든 배트를 갖다 대서 맞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정타를 때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 그러니 땅볼 두 개로 물러난 것이다. *** 1회 초, 졸리엣 슬래머스의 공격. 수비에 나선 샴버그 부머스의 감독 릭 헤르난데스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강무백이 잘 해낼 수 있겠지?’ 강무백이라는 투수의 자체 실력에 의문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훈련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투구만으로도 그의 기량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으니까. 문제는 그가 던지는 너클볼이라는 구종 그 자체였다. ‘너클볼 투수는 마운드에 서는 투수 중에서도 유독 예민한 존재야.’ 일반적인 투수들도 사소한 이슈로 밸런스가 쉽게 흔들린다. 그런데 그보다 더 예민한 너클볼 투수들은 어떠하겠는가. 공기의 흐름이나 손끝의 아주 사소한 차이 하나조차 투구 전체를 흔들어놓을 수 있었다. 만약 실전 첫 등판이라는 중압감에 긴장이라도 해서 실투가 터져 나온다면? ‘그러면 그야말로 최악이지.’ 강무백은 이미 25인 로스터 진입이 사실상 확정된 자원이었다. 트라이아웃에서 무려 1라운드로 지명한 선수가 실전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면 팀에 가해질 타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플레이 볼!” 주심의 힘찬 경기 시작 선언이 그라운드에 울려 퍼졌다. 이어 마운드 위 강무백의 손을 떠난 초구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스트라이크!” 우렁찬 스트라이크 콜이 떨어지자마자,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저도 모르게 불끈 주먹을 쥐었다. ‘좋았어!’ 허공을 유영하듯 날아간 강무백의 아름다운 너클볼 궤적은 훈련장에서 보았던 바로 그 완벽한 형태였다. 그제야 비로소 안도감이 밀려온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털썩 의자에 몸을 맡겼다. 강무백의 컨디션이 최상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 과도하게 그의 투구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훈련장에서 보여준 모습 그대로야.’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명확했다. ‘오늘 경기는 절대 안 진다는 거지.’ 릭 헤르난데스 감독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쾌재를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강무백은 1회 초를 완벽한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요리하고 이닝을 끝냈다. 그가 유유히 덕아웃으로 걸어 들어오자, 릭 헤르난데스 감독과 투수 코치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가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잘했다. 공이 너무 좋았어. 남은 공도 자신감 있게 던져라.” “예. 알겠습니다.” 강무백은 가볍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벤치에 앉아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경기는 3회 초까지 막힘없이 무난하게 흘러갔다. 비록 시범 경기였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더비 경기인 데다 개막 직전 치르는 마지막 실전 점검이었기에 그라운드 위의 열기는 정규 시즌 못지않게 치열했다. 팽팽한 흐름이 이어지자, 릭 헤르난데스 감독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안심했던 감정이 슬금슬금 다시 불안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3회 초 역시 땅볼 두 개와 뜬공 하나로 타자들을 잡아내며 깔끔하게 이닝을 정리한 강무백. 하지만 마운드 위 완벽한 투구를 지켜보는 릭 헤르난데스 감독의 고민은 오히려 깊어만 갔다. ‘그냥 여기서 강무백을 빼버릴까?’ 직접 실전 투구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강무백이 우리 팀 확실한 1선발이다. 이 녀석의 공은 독립리그 수준을 뛰어넘었어.’ 그리고 그 사실이 뜻하는 바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강무백이 이 독립리그라는 우물 안에서 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리라는 점이었다. ‘조만간 메이저리그 산하 마이너리그로 스카웃되어 떠나겠군.’ 애초에 이런 수준 낮은 독립리그에 갇혀 있을 재능이 아니었다. 샴버그 부머스의 감독인 릭 헤르난데스 입장에서는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보물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팀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오래 써먹어야 하는데… 괜히 시범 경기 따위에서 시선을 끌어 마이너리그행을 가속할 필요는 없지.’ 아무리 시범 경기라 해도 압도적인 투구 내용을 남기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소문이 퍼져 메이저리그 구단의 상주 스카우트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것이 뻔했다. ‘그래, 빼자. 어차피 시범 경기일 뿐이다. 아무리 더비 라이벌전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강무백은 리그 개막전 선발로 출전시켜야 하니 관리해 준다는 명분도 충분하고.’ 결단을 내린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즉시 옆에 있던 투구 코치를 향해 손짓했다. “불펜 투수들 몸 풀게 해.” “예? 벌써요? 강무백이 지금 잘 던지고 있는데요…?” 릭 헤르난데스 감독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최대한 아껴야지.” 감독의 의중을 알아챈 투수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불펜 대기조를 향해 사인을 보냈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마운드에서 유유히 내려오는 강무백에게 다가갔다. “캉, 오늘은 딱 여기까지 던지자. 시범 경기니까 3이닝만 먹어줘도 충분하다.” “예, 알겠습니다.” 네이비색 훈련복 소매로 땀을 훔쳐낸 강무백이 조용히 대답했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그이 표정을 가만히 살폈다. ‘표정이 그리 좋진 않군. 사실 정규 시즌도 아니고 시범 경기에서 3이닝이나 맡겨준 거면 충분히 많이 던지게 해준 건데.’ 경기 시작 전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승부욕을 끌어올리기 위해 “오늘 경기는 시범 경기가 아니라 정규 시즌 실전처럼 치른다”라고 선언했던 게 마음이 걸린 모양이었다. ‘실전처럼 경기하는데 3이닝 만에 내려간 것이니.’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주변에 서 있는 다른 선수들이 듣지 못하도록 강무백의 귓가에 슬쩍 다가가 몰래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라. 오늘, 네 투구는 그야말로 완벽했어. 로스터에서 방출당할 일은 절대 없으니까. 아니, 네 지금 컨디션만 잘 유지해 주면 개막전 1선발 자리는 무조건 네 거다.” 강무백을 확실히 안심시키고 기를 살려주기 위한 감독의 진심 어린 한마디였다. 그러나 정작 선발 자리를 약속받았음에도 강무백의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그는 감독을 향해 그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건넨 뒤, 어깨 아이싱을 하러 터벅터벅 라커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그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아, 로스터에 못 들어갈까 봐 걱정한 것이 아니고 그냥 공을 더 던지고 싶었던 거였군.’ 마운드 위에서 조금이라도 더 던지고 싶었던 투수 본연의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 나는 트레이닝실로 들어가 라커룸 의자에 앉아 어깨 아이싱을 받고 있었다. ‘쩝, 좀 더 던지고 싶었는데.’ 중학교 시절 이후 제대로 던져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d3kza0VLSVdxajZ6L09aWC8xUnR2QmhIOWhmYmc4YTcxak40RytmOGY4TVdNT1cvK0t3RU1kbmRDTmtRRGZFdg
공을 하나하나 던질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운드에 더 서 있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너클볼이라는 공을 단 한 개라도 더 많이 던지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선수들과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너클볼을 한 개라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흐흐, 그래도 괜찮아. 오늘 상대 팀 타자들 반응도 아주 찰쳤고, 내 너클볼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상대 타자들이 내 공에 헛스윙하며 하나씩 아웃당할 때마다 뇌리를 스치던 그 짜릿한 쾌감을 차분히 되새김질했다. 생각할수록 온몸이 점점 더워지며 다시 마운드로 달려 나가고 싶을 만큼 몸이 근질거렸다. ‘아, 진짜 더 던지고 싶다.’ 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며 속에서 미친 듯이 치밀어 오르는 투구 욕구를 겨우 진정시켰다. ‘아니지, 감독님이 아까 분명히 말했잖아. 내가 개막전 선발이라고. 크크, 그때 가서 실컷 던지면 되는 거야.’ 애초에 나는 남들보다 너클볼을 압도적으로 많이 던지기 위해 근지구력을 미친 듯이 키우고 있었다. 그만큼 투구 수에 대한 욕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 경기의 목표는 이미 확실하게 정해졌다. 최대한 많이 던진다. ‘9이닝 완봉. 나의 너클볼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는 거야.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무실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