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데뷔전(1)
7화 데뷔전(1)
7화 데뷔전(1) 스프링 캠프 마지막 시범 경기가 끝났다. 경기는 우리 팀 샴버그 부머스의 패배였다. ‘어쩔 수 없긴 해. 우리 팀은 선발을 3이닝 만에 내렸으니까. 반대로 상대 팀은 전력으로 승부했고.’ 그래도 패배라는 단어가 주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개막전을 5일 앞두고 3이닝을 던졌다. ‘이 정도면 개막전에 선발로 나갈 수 있어.’ 휴식 기간은 충분하다. 그렇게 남은 스프링 캠프 기간은 리그 준비를 하며 지나갔고 모두 끝났다. 그리고 나는 당당히 25인 정식 로스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라커룸 벽에 붙은 로스터 명단에 내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어머니. 잘 지내시죠? 저 저번에 말씀드린 스프링 캠프 끝나서요. 25인 로스터 안에 들어서 정식 선수가 됐어요.” 스마트폰 너머로 기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동안 축하를 건네던 어머니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아, 연봉이요? 그건… 사실 얼마 못 받아요.” 프런티어 리그는 구단마다 총연봉 상한선이 엄격하게 존재한다. 흔히 샐러리 캡이라고 부르는 규정인데, 한 팀당 일 년에 쓸 수 있는 금액이 약 $100,000에서 $120,000 정도다. 구단 선수들 전체 연봉이 그 정도다 보니 선수 개개인이 받는 돈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나 같은 신인 선수의 경우, 월급으로 손에 쥐는 돈은 딱 $1,200. 한국 돈으로 약 160만 원 정도가 전부다. ‘확실히 엄청 짜긴 하지.’ 심지어 일 년 내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정규 시즌이 열리는 딱 4개월 동안만 월급이 지불된다. ‘뭐, 그래도 크게 중요하진 않아. 어차피 이 리그에 오래 머물러 있을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 개막전 전날. 샴버그 부머스의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내일 있을 플로렌스 얄스와의 개막전 경기를 구상하고 있었다. 개막전 선발 투수는 당연하게도 강무백이었다. 라인업 서류에 이름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던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강무백의 이름 옆에 등번호를 적으려다 말고 손끝을 멈칫했다. [88 KANG, MOO_BAEK (P)] ‘88번이라, 독특한 등번호를 요구했었지.’ 원하는 등번호 있냐고 물어보니까 나온 대답은 88번이었다. 뭐, 구단 내에 기존에 88번을 달고 뛰던 다른 선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등번호 요구 자체는 흔쾌히 수락했었다. 다만 왜 88번을 선택했는지 궁금해 강무백에게 그 이유를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다. ‘88이라는 숫자 모양 자체가 본인이 던지는 너클볼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보여준다나 뭐라나….’ 너클볼의 불규칙한 궤적을 상징한다느니, 양옆으로 펼쳐진 모양이 너클볼을 비유하는 나비 날개를 연상시킨다느니. 가볍게 한 번 물었다가 너클볼의 미학과 궤적에 대해 무려 30분 동안이나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 ‘그놈이 야구는 참 기깔나게 잘하는데, 약간 또라이 같은 구석이 있단 말이지.’ 다음 날.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대형 스피커를 타고 윈트러스트 필드 구장 전체로 시원하게 퍼져 나갔다. “Good evening, Ladies and Gentlemen! Welcome to Wintrust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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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의 대사가 울리자마자 관중석을 가득 채운 3천여 명의 홈 팬들이 일제히 뜨거운 함성을 터뜨렸다. 썰렁했던 시범 경기 때와는 확실히 다른 개막전의 열기였다. 독립리그라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구단답게, 메인 스탠드는 이미 가족 단위 관중들과 지역 팬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5월 8일! 오늘이죠? 여러분이 손꼽아 기다리신 2026 프런티어 리그 개막전이 마침내 찾아왔습니다!” 전광판의 시계가 정확히 오후 6시 30분을 가리켰다. 동시에 웅장한 조명탑이 필드를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플레이 볼!” 주심의 힘찬 콜과 함께 개막전 경기가 시작되었다. 1회 초, 플로렌스 얄스의 공격. 수비는 홈팀 샴버그 부머스, 선발 투수는 등번호 88번의 강무백이었다.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덕아웃에서 마운드 위에 서 있는 강무백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무백은 천천히 숨을 가다듬으며 투구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초구, 포수 미트를 향해 망설임 없이 공을 던졌다. 덕아웃에서 지켜보고 있던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강무백의 손끝을 떠난 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공중에서 회전도 없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 너클볼을 보며 열정적으로 본인의 공을 찬양하던 강무백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런 공을 직접 던지니, 너클볼에 미치는 건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지도.’ 한때 투수의 꿈을 품었던 릭 헤르난데스 감독은 상당히 또라이 같았던 강무백의 모습이 조금은 이해될 것도 같았다. *** 심판의 플레이 볼 선언이 그라운드에 울려 퍼졌다. 나는 지체 없이 투구 자세를 취했다. 글러브 속에서 손끝으로 공 가죽을 콕 찍어 누르며 너클볼 그립을 쥐었다. ‘그래도 시범 경기를 뛰어서 그런지 많이 긴장되지는 않네.’ 개막전이자 프로 데뷔전. 긴장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너클볼 그립을 쥐고 공과 연결되는 감각을 느끼면 곧바로 사라졌다. 머릿속이 차분해지는 감각. 마운드 위에 가만히 서서 숨을 한 번 가다듬은 뒤, 망설임 없이 포수 미트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쉬익- 공이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실밥의 회전이 완벽하게 억제된 채 공중에 떠가는 모습. 그 야구공 하나만 흐르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퍼억! “스트라이크!” 타석에 선 상대 1번 타자는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을 지켜보았다. 초구는 지켜볼 생각이었는지 타격 자세를 미리 풀었던 상대 타자. 초구를 보자 타석에서 물러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크크, 백 번을 지켜봐라. 내 공을 칠 수 있나.’ 타자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타격 준비를 끝내자, 나는 쉬지 않고 곧바로 2구를 내던졌다. 쉬익- 시속 70마일 안팎의 느린 속도로 날아가는 공. 이번에는 타자의 배트가 끌려 나오자, 염력으로 공의 궤적을 슬쩍 조종해 배트 끝을 비껴가게 했다. 그러자 타자는 어떻게든 배트 궤적을 비틀어 공을 맞히려고 몸을 비틀었다. 틱- 공이 배트 끝에 살짝 빗맞으며 2루수 정면을 향해 힘없이 굴러갔다. 2루수가 여유롭게 공을 집어 들고 1루를 향해 정확히 송구했다. “아웃!” 1루심의 아웃 콜. ‘오늘 내 목표는 9이닝 완봉승이야. 이렇게 효율적으로 투구 수를 아끼는 건 아주 좋은 현상이지.’ 너클볼을 한 개라도 더 많이 던지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올랐지만, 일단 오늘 경기 최우선 목표는 무실점 완봉승이었다. 거기에 오늘 상대 1번 타자처럼 어떻게든 배트 궤적을 비틀어 공을 억지로 맞히려 드는 타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실제로 불규칙한 궤적의 너클볼을 상대할 때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내려면 그렇게라도 배트를 갖다 대는 수가 최선이니까. ‘물론 그렇게 엉성하게 쳐봐야 타구에 힘도 안 들어가고, 정타가 될 확률도 거의 없지.’ 결국 이렇게 맥없이 굴러가는 땅볼이나 허무한 뜬공으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억지로 맞히려 드는 것조차 염력으로 궤적을 꺾어 아예 피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간 공의 움직임이 너무 부자연스러워질 수 있단 말이지.’ 내가 공의 궤적을 바꿔 헛스윙을 만드는 과정은 상대의 배트 스윙 궤적을 정밀하게 읽고 피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배트 스윙이 얼마나 빠른데 그 짧은 순간에 스윙 궤적을 일일이 보고 피하겠냐.’ 타자의 배트 스피드가 워낙 빠른 데다 마운드와 타석 사이의 거리도 있어서 배트 궤적을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살피는 건 불가능했다. 실제로는 상대 타자가 휘두르기 시작하는 시동 모션을 보고, 공을 치기 힘든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코스로 보내는 것에 가깝다. 만약 그러다 상대 타자가 엄청난 제동력으로 스윙을 멈춰 세우면, 그 공은 그대로 볼이 되는 구조였다. 즉, 이론상으로 내가 배트를 피하려고 보낸 코스에 타자가 우연히 배트를 휘두르면 정타가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론상의 이야기지. 확률이 0%는 아니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 그 자그마한 확률조차 없애는 방법도 물론 있다. 변화의 각을 크게 해서 타자가 절대 못 치는 코스로 꺾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근데 그건 너클볼이라고 할 수 없잖아. 그렇게 크게 꺾이면 그건 너클볼이 아니라 스위퍼지.’ 너클볼이 아무리 불규칙한 궤적을 그린다고 할지라도, 비현실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타자 바로 코앞에서 공을 급격하게 꺾어버리는 무리한 궤적 변경은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타를 피하고 빗맞은 땅볼을 유도하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운영 방식이었다. ‘혹시라도 내 염력이 들키는 최악의 상황은 무조건 피해야 하니까.’ 애초에 일반적인 너클볼이란 구종 자체가 삼진을 적극적으로 잡아내기보다는, 타자의 정타를 피하며 맞춰 잡는 피네스형 투수에 가까운 법이다. ‘R.A. 디키가 구사했던 85 mph가 넘어가는 고속 너클볼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너클볼은 맞춰 잡는 구종으로 보는 게 맞지.’ 물론 일반적인 너클볼이 그렇다는 말이다. 상대 1번 타자처럼 어떻게든 컨택하려는 타격이 아닌, 자신만의 코스를 정해두고 배트를 휘두르는 현대 야구 타격 메커니즘을 가진 타자라면 얘기가 달랐다. 그런 타자들을 상대로는 얼마든지 삼진을 잡을 수 있으니까. 쉬익-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상대 팀 2번 타자는 완벽하게 삼진으로 잡아냈다. 2번 타자는 마운드에서 어떤 공이 날아오든 개의치 않고, 자신이 미리 설정해 둔 스윙 궤적만을 고집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타격을 고수하는 녀석이었다. 결과는 간단했다. 내 너클볼의 움직임에 헛스윙 세 번을 하고 씁쓸하게 물러난 것이다. ‘역시 이런 스타일의 타자가 상대하기 제일 편하지. 한 번 제대로 맞아떨어지면 대형 장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 앞에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심지어 타자가 공을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힌다고 해도, 생각보다 홈런이 쉽게 터져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야구에서 타구 속도는 타자의 배트 스피드와 투수가 던진 공의 구속의 합으로 결정된다. 상대 투수의 공이 빠르면 빠를수록 반발력이 극대화되어 더 빠른 속도로 멀리 날아가고, 그게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이 되는 원리다. 반면에 너클볼은 구속이 70 mph 안팎으로 워낙 느릿느릿하다 보니, 타자가 정타를 때려도 공 자체에 축적된 반발 에너지가 부족해 타구가 멀리 뻗지 못한다. 결국 너클볼을 담장 밖으로 넘겨 홈런을 만들어내려면, 순수하게 타자 본인의 힘으로 공을 쏘아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크크, 이렇게 조건만 놓고 보면 너클볼이 무슨 개사기 구종처럼 보이긴 하지.’ 근데, 맞다. 이론상으로만 따지면 너클볼은 야구에서 가장 완벽한 개사기 구종이 맞다. 그렇다면 다른 투수들도 개나 소나 너클볼만 던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애초에 개나 소나 던질 수 있는 공이 아니다. 너클볼이라는 구종 자체가 요구하는 구사 난도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공 하나 던져보겠다고 4년이라는 시간을 괜히 버린 게 아니라고.’ 설령 너클볼을 마운드에서 던질 수 있게 된다 한들, 실투의 위험성이 크다. ‘다른 구종에 비해 실투 리스크가 너무 크단 말이지.’ 쉽게 말해, 다른 구종에 비해 실투를 저지를 확률도 압도적으로 큰데, 실투를 타격했을 때 오는 위험성도 크다는 것이다. ‘거기에 제구가 전혀 안 된다는 고질적인 단점과, 포구 난이도까지.’ 이런 수많은 단점이 너클볼이 가진 장점들을 싹 다 상쇄하고도 남았기에, 현대 야구에서 너클볼 투수가 사실상 사장되어 버린 것이다. 쉬익- 틱! 어느새 들어선 3번 타자의 방망이 끝에 빗맞은 타구가 내야 하늘 위로 솟구쳤다. 1루수가 가볍게 포구하여 이닝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