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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영웅이 필요 없어진 세계

용사가 사라진 시대~그럼에도 용사가 되어보려고 합니다~ — novel.naver.com · All chapters

프롤로그 — 영웅이 필요 없어진 세계

마왕이 죽었다.

300년 동안 대륙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마왕이 마침내 용사의 검에 쓰러졌다는 소식은 왕국의 전령들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국경을 지키던 병사들은 무기를 내려놓았고, 오랫동안 성문을 닫아걸었던 도시들은 하나둘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구도 그 소식을 쉽게 믿지 못했다.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도, 고향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던 사람도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왕성이 함락되었다는 공식 발표가 내려지고, 살아남은 용사 일행이 왕도로 귀환하자 사람들은 비로소 전쟁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그날 왕도에서는 역사상 가장 성대한 축제가 열렸다.

광장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모여들었고, 건물마다 화려한 깃발이 내걸렸다. 상인들은 술과 음식을 무료로 나누어주었으며, 거리의 악사들은 밤이 깊도록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어깨를 끌어안고 웃었고, 누군가는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왕국의 국왕은 직접 성벽 위에 올라 용사 일행의 공적을 치하했다. 그들이 지나온 여정과 희생된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할 때마다 광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용사 만세! 왕국 만세!"

그 외침은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과 함께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누구도 내일의 전쟁을 걱정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처음 보는 축제의 풍경에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세계는 평화를 되찾았다.

전쟁이 끝난 지 3년이 지났을 무렵, 왕도 중앙 광장에는 거대한 기념비가 세워졌다. 마왕을 쓰러뜨린 용사와 그 여정을 함께한 동료들의 모습을 조각한 석상이었으며, 받침대에는 그들의 이름과 업적이 새겨졌다.

기념비가 완성된 날에도 사람들은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석상을 올려다보며 자신도 언젠가 용사가 되겠다고 외쳤고,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용사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특별했다.

왕국에서는 매년 마왕 토벌을 기념하는 축제를 개최했고, 거리에서는 용사 일행의 모험담을 노래하는 음유시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모험가 길드에는 용사를 동경해 검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으며, 서점에는 그들의 여정을 기록한 책들이 진열되었다.

그러나 평화는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이어졌다.

10년이 지나자 전쟁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무너진 성벽은 복구되었고, 황폐해졌던 농지에는 다시 곡식이 자라났다. 왕국 사이의 교역로가 열리면서 상인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 떠났고, 모험가들은 마왕군 대신 마물 토벌과 상단 호위 의뢰를 맡았다.

20년이 지나자 마왕과의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성인이 되었다. 그들에게 마왕은 역사책에 등장하는 악당이었고, 용사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들었던 이야기 속 영웅에 가까웠다.

한때 광장을 가득 메웠던 마왕 토벌 기념 축제도 점차 규모가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보다 풍년과 새로운 국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30년이 지나자 용사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마을에서는 용사가 홀로 마왕을 쓰러뜨렸다고 전했고, 다른 도시에서는 용사 일행이 신의 도움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늙어갔고, 그들이 남긴 기록마저 새로운 전설과 뒤섞였다.

그리고 50년.

왕도 중앙 광장에 세워진 기념비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만 오랜 비바람에 석상의 얼굴은 조금씩 닳아 있었고, 받침대에 새겨진 이름 몇 개는 제대로 읽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졌다. 매일 아침 꽃을 바치던 사람들도 어느새 사라졌으며, 광장을 오가는 시민 대부분은 석상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 화창한 오후, 광장에서 놀던 어린아이가 석상을 가리키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저 사람들은 누구야?"

"옛날에 마왕을 물리친 용사님들이란다. 저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거야."

"마왕? 그게 뭔데?"

어머니는 잠시 대답을 고민하다가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금세 다른 곳에 관심을 빼앗겼고, 조금 전까지 궁금해하던 석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마왕의 존재를 모르고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 이루어낸 평화의 증거였으니까.

왕국의 기사들은 국경을 지켰고, 모험가들은 여전히 검과 지팡이를 들고 미지의 땅으로 향했다. 마물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래된 유적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물이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누구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날 필요는 없었다.

용사를 선발하던 왕국의 의식은 오래전에 폐지되었고, 전설의 성검은 왕궁 깊은 곳에 보관되었다. 한때 모든 모험가가 꿈꾸었던 용사라는 칭호도 더 이상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렇게 용사는 역사가 되었고, 역사는 전설이 되었으며, 전설은 사람들이 가끔 떠올리는 오래된 이야기로 남았다.

누군가는 그런 시대를 영웅이 사라진 시대라고 불렀다.

하지만 정작 영웅들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런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마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이들이 전쟁을 모른 채 성장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내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세상.

그리고 바로 그 평화로운 시대에도, 낡은 모험담을 품에 안고 언젠가 용사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 있었다.

아직 자신의 이름조차 세상에 알리지 못한, 아주 평범한 모험가 한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