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모험가 길드
2화 — 모험가 길드
왕도 모험가 길드의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사람들의 떠들썩한 대화 소리였다. 넓은 실내에는 원형 탁자 여러 개가 놓여 있었고, 한쪽 벽에는 의뢰서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접수대 앞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으며, 무장을 갖춘 모험가들은 저마다의 용무를 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에린은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책에서 읽었던 모험가 길드는 언제나 위험한 의뢰를 앞둔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모여 있는 장소였지만, 실제로 마주한 풍경은 그녀의 상상과 상당히 달랐다.
"아니, 그러니까 어제 분명히 12개를 가져왔다니까?"
"접수된 건 11개인데요. 나머지 하나는 어디 있습니까?"
"그걸 알았으면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고!"
접수대에서는 덩치가 큰 남성이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고, 근처 탁자에서는 모험가 3명이 점심 메뉴를 두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의뢰 보수가 적다며 투덜거렸고, 다른 누군가는 장비 수리비 때문에 이번 달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에린은 그런 광경을 잠시 구경하다가 벽에 붙은 안내판을 발견했다. 신규 등록자는 3번 접수대로 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등록 절차와 필요한 서류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좋아, 일단 등록부터……."
그녀는 가방끈을 고쳐 메고 접수대로 향했다. 3번 창구에는 밝은 금발을 단정하게 묶은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서류를 정리하던 직원은 에린이 다가오자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모험가 길드 아르벨 왕도 지부입니다. 어떤 일로 방문하셨나요?"
"안녕하세요! 저, 모험가 등록을 하고 싶어서 왔어요."
"신규 등록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먼저 성함과 나이를 알려주시겠어요?"
"에린이라고 해요. 올해 16살이에요!"
직원은 서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더니 에린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나이를 확인하자 잠시 펜을 멈추고, 책상 아래에서 조금 더 두꺼운 안내서를 꺼내 펼쳤다.
"16살이면 미성년 등록 대상이시네요. 보호자 동의서는 가져오셨나요?"
"……네?"
"부모님이나 법적 보호자의 서명이 필요한 서류예요. 미성년자가 정식 모험가로 활동하려면 반드시 제출하셔야 하거든요."
에린은 잠시 굳어버렸다. 아침에 부모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때는 길드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겠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 등록 허락까지 받은 것은 아니었다.
"혹시…… 지금 당장 없으면 등록을 못 하나요?"
"네. 다만 상담이나 기초 적성 검사는 먼저 받으실 수 있어요. 등록은 보호자 동의서를 제출한 다음에 진행하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오늘은 상담부터 받아볼게요."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안내서를 에린 쪽으로 돌려주었다. 표지에는 모험가 길드 신규 등록 안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고, 안쪽에는 등급과 의뢰 종류, 활동 규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저는 리아라고 해요. 신규 모험가 등록과 상담을 담당하고 있으니 궁금한 점이 있다면 편하게 물어보세요."
"네, 리아 씨! 잘 부탁드려요."
"우선 모험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혹시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가 있으신가요?"
에린은 잠시 고민했다. 마물 토벌이나 유적 탐사 같은 일을 하고 싶기는 했지만, 아직 실제 모험가들이 어떤 의뢰를 받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위험한 곳에 가서 마물을 잡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먼 곳으로 여행도 떠나보고 싶고요."
"그렇군요. 다만 처음부터 마물 토벌을 맡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신규 모험가는 기본적으로 F등급에서 시작하고, 일정한 실적과 평가를 쌓아야 상위 등급으로 승급할 수 있거든요."
리아는 안내서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모험가 등급은 F부터 A까지 구분되어 있었으며, 그 위에는 국가 단위의 특별 의뢰를 수행할 수 있는 S등급이 별도로 존재했다.
"F등급은 주로 약초 채집, 물품 운반, 도시 주변의 간단한 조사 같은 일을 맡아요. 위험도가 높은 의뢰는 길드에서 수락을 제한하고 있고요."
"그럼 마물 토벌은 언제부터 할 수 있나요?"
"기본적으로 E등급부터 저위험 마물 토벌을 신청할 수 있어요. 물론 승급했다고 해서 무조건 혼자 나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마물의 종류에 따라 동행 인원이 필요할 수도 있거든요."
에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검을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당장 위험한 숲에 들어가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에린 씨는 검술을 배워보신 적이 있으세요?"
"네! 마을 경비대장님께 2년 정도 배웠어요. 아직 잘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자세나 움직임은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기초 적성 검사에서는 조금 유리하시겠네요. 다만 실전 경험이 없다면 무리하지 않는 게 좋아요."
리아는 에린의 대답을 기록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직원에게 잠시 접수대를 부탁하더니, 에린을 길드 건물 뒤편에 마련된 훈련장으로 안내했다.
훈련장은 생각보다 넓었다.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깔려 있었고, 벽면에는 목검과 방패, 훈련용 창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중앙에서는 젊은 모험가 2명이 목검을 맞대고 있었으며, 그 옆에서는 한 남성이 팔짱을 낀 채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렌 씨, 신규 등록 희망자예요. 기초 적성 검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응? 또 신입인가?"
남성은 고개를 돌려 에린을 바라보았다. 짧게 자른 검은 머리와 왼쪽 눈썹 위의 작은 흉터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는데, 허리에는 낡은 장검이 걸려 있었고 두꺼운 팔에는 오래된 상처가 여러 개 남아 있었다.
"이름은?"
"에린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에린. 나는 가렌이다. 길드에서 신입 훈련을 맡고 있지. 검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 다룰 줄 아나?"
"기본적인 건 할 수 있어요."
"그럼 한번 보여줘. 저기 있는 목검 중에서 손에 맞는 걸 골라봐."
에린은 벽면으로 다가가 목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평소 사용하던 훈련용 검보다 조금 무거웠지만, 몇 번 가볍게 휘둘러보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가렌은 그녀가 검을 쥐는 모습을 살펴보다가 훈련장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놓여 있던 목검을 집어 들며 에린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라고 지시했다.
"검을 다룰 줄 아는지 확인하는 정도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내가 공격할 테니 막거나 피하면 된다."
"네! 준비됐어요."
에린은 두 손으로 목검을 쥐고 자세를 낮췄다. 가렌은 그녀의 발 위치를 잠시 확인하더니 별다른 예고 없이 목검을 가볍게 내질렀고, 에린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탁!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가 훈련장에 울렸다. 에린은 생각보다 묵직한 충격에 손목이 흔들렸지만, 곧바로 자세를 고쳐 잡으며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흠, 자세는 나쁘지 않군. 그럼 이번에는 조금 빠르게 간다."
가렌의 목검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오른쪽 어깨를 향한 공격이었고, 에린은 검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상대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빨라 한 박자 늦게 반응하고 말았다.
툭!
목검 끝이 에린의 어깨에 가볍게 닿았다.
"아야!"
"거기까지. 괜찮나?"
"네, 괜찮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엄청 빠르시네요."
"이 정도는 빠른 축에도 못 들어. 실제 마물은 공격한다고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한 번 맞았다고 멈춰주지도 않거든."
가렌은 목검을 내려놓으며 에린의 자세를 다시 살펴보았다. 기본적인 검술 교육을 받은 흔적은 분명했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읽거나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대응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했다.
"기초는 배웠군. 하지만 실전에서는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주변을 살피고 위험을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특히 혼자 행동할 생각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네. 앞으로 열심히 배울게요."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모험가가 되려는 이유가 뭐지?"
에린은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들었다.
"영웅이 되고 싶어서요!"
가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검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에린을 돌아보았다.
"……영웅?"
"네! 언젠가는 많은 사람을 도와주는 훌륭한 영웅이 되고 싶어요."
"요즘 젊은 애들 중에도 그런 꿈을 꾸는 녀석이 있긴 하구나."
가렌은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에린을 비웃는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오래간만에 듣는 대답이 조금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뭐, 꿈이야 자유지. 하지만 영웅이 되기 전에 우선 제대로 된 모험가부터 되는 게 좋을 거다."
"그건 당연하죠! 저도 처음부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럼 됐어. 검술 기초는 합격이다. 정식 등록만 마치면 신입 훈련에도 참가할 수 있을 거야."
에린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렌은 그런 그녀에게 훈련용 목검을 돌려놓으라고 말한 뒤, 다시 다른 모험가들의 훈련을 살피기 시작했다.
검사를 마치고 접수대로 돌아오자 리아가 결과를 확인해 주었다. 기초 적성 검사에는 문제가 없었으며, 보호자 동의서만 제출하면 정식 등록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이건 신규 등록 희망자에게 드리는 안내서예요. 집에 가셔서 부모님과 함께 읽어보세요."
"감사합니다! 내일 다시 와도 될까요?"
"물론이죠. 다만 부모님과 충분히 상의하고 오셔야 해요. 모험가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책임져야 할 일이 많으니까요."
에린은 안내서와 동의서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리아에게 인사를 건넨 뒤 길드 밖으로 나왔는데, 어느새 해가 조금 기울어 거리에는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에린은 어깨를 가볍게 움직였다. 조금 전 가렌에게 맞았던 부위가 아직도 얼얼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되었다. 검술을 2년이나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모험가를 상대로는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에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도착한 에린이 현관문을 열자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마리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토마스 역시 거실에서 장부를 정리하다가 딸의 목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길드에는 잘 다녀왔니?"
"네! 상담도 받고, 검술 검사도 받았어요. 그리고 이거요!"
에린은 가방에서 동의서를 꺼내 부모님 앞에 펼쳐 보였다. 종이에는 보호자의 이름과 서명을 적는 칸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모험가 활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안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토마스는 서류를 받아 들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마리나 역시 남편의 옆으로 다가와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두 사람의 표정은 아침보다 조금 더 진지해져 있었다.
"에린, 정말로 모험가가 되고 싶은 거니?"
"네. 오늘 길드에 다녀오니까 더 확실해졌어요. 아직 부족한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어요."
토마스는 딸을 바라보다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잠시 후 그는 펜을 집어 들었지만, 곧바로 서명하지 않고 에린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좋다. 대신 처음 3개월 동안은 왕도 주변에서만 활동하는 거다. 위험한 의뢰는 절대 혼자 맡지 말고, 다치거나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집에 알려야 해."
"정말요?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네가 이렇게까지 하고 싶다는데 계속 반대할 수도 없지. 하지만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네! 꼭 지킬게요!"
마리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지만, 남편이 서명을 마치자 자신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에린의 가방에 넣어줄 간단한 구급용품을 준비해야겠다며 부엌으로 돌아갔다.
에린은 부모님의 서명이 적힌 동의서를 두 손으로 소중하게 받아 들었다.
아직 정식 모험가가 된 것도 아니었고, 의뢰를 하나 수행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내일이면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었던 길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그날 밤, 에린은 잠자리에 들기 전 길드에서 받아온 안내서를 다시 펼쳤다.
모험가 등급과 의뢰 수칙, 장비 관리 방법, 길드에서 운영하는 신입 교육 일정까지. 처음 보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녀는 한 장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마지막 장에 적힌 문구를 발견하고 잠시 손을 멈췄다.
모험가 길드는 모든 모험가의 안전한 귀환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에린은 그 문장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책 속의 영웅들은 언제나 위험한 모험을 떠났고,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끝에 사람들을 구했다. 하지만 오늘 만난 가렌과 리아는 강해지는 방법보다 무사히 돌아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이야기했다.
아직은 그 차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에린은 안내서를 덮고 침대 옆 작은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내일 제출할 동의서가 구겨지지 않도록 책 사이에 끼워 넣은 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왕도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내일은 정식으로 모험가 길드에 등록하는 날이었다.
그녀의 첫 번째 모험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