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쉽지 않은 하루
4화 — 쉽지 않은 하루
모험가가 된 지 2일째 되는 아침, 에린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을 나섰다. 전날 약초를 채집하느라 오랫동안 허리를 숙였던 탓인지 허벅지와 종아리가 뻐근했고, 침대에서 일어날 때마다 온몸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기분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어제 처음으로 받은 의뢰 보수는 작은 주머니에 따로 보관해 두었고, 오늘은 아버지가 건네준 장비 구입비를 보태 제대로 된 검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검이랑 장갑, 그리고 가방도 조금 더 튼튼한 걸로 바꾸면 좋겠는데……."
에린은 길드에서 받은 안내서를 펼쳐 필요한 물품들을 확인했다. 초보 모험가에게 권장하는 장비는 생각보다 많았지만, 당장 모든 것을 구입하기에는 가진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
우선 검부터 마련하기로 결정한 에린은 왕도 동쪽에 있는 상업 지구로 향했다. 그곳은 대장간과 방어구점, 잡화점이 밀집한 거리로, 모험가들이 장비를 구입하거나 수리하기 위해 자주 방문하는 장소였다.
거리에 들어서자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가게마다 진열된 검과 방패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물건을 구경하고 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에린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무기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낡은 나무 간판에는 '황금 망치 상회'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가게 입구에는 여러 종류의 검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다른 가게보다 물건이 많아 보였기에 에린은 별다른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어떤 물건을 찾으십니까?"
계산대 뒤에 있던 중년 남성이 반갑게 인사했다. 잘 정돈된 콧수염과 화려한 조끼가 인상적인 상인이었는데, 그는 에린의 허리춤에 달린 길드 금속패를 발견하자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오호, 모험가시군요. 혹시 새로 등록하셨습니까?"
"네! 어제 첫 의뢰를 마쳤어요. 오늘은 검을 하나 사려고요."
"그렇습니까?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저희 가게에는 초보 모험가에게 적합한 무기가 아주 많거든요."
상인은 계산대에서 나와 진열장으로 에린을 안내했다. 그곳에는 짧은 검부터 양손으로 사용하는 대검까지 다양한 무기가 놓여 있었고, 에린은 처음 보는 무기들의 모습에 눈을 반짝였다.
"우와…… 생각보다 종류가 엄청 많네요."
"물론이지요. 검은 모험가의 생명을 책임지는 물건입니다. 아무거나 골랐다가는 위험한 상황에서 큰일을 당할 수도 있지요."
에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날 뿔토끼를 만났을 때 제대로 된 검이 없어 당황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상인의 설명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렸다.
"저는 한손검을 배우고 있어요. 너무 무겁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검이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이 물건이 제격이겠군요."
상인은 진열장 안쪽에서 검 한 자루를 꺼냈다. 은빛 검신에는 희미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손잡이에는 짙은 갈색 가죽이 감겨 있었다. 겉보기에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물건이었다.
"왕국 북부에서 들여온 특별한 강철로 제작한 검입니다. 일반적인 철검보다 훨씬 튼튼하고, 마물의 가죽도 쉽게 베어낼 수 있지요."
"정말요? 한번 들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조심해서 다뤄주십시오."
에린은 검을 받아 들고 무게를 확인했다. 평소 사용하던 목검보다 조금 무거웠지만, 양손으로 잡지 않아도 충분히 다룰 수 있을 정도였다.
"괜찮은 것 같아요. 가격은 얼마인가요?"
"은화 45닢입니다."
에린의 표정이 굳었다.
아버지가 건네준 돈과 자신이 처음으로 벌어들인 보수를 모두 합쳐도 은화 30닢 남짓이었다. 검 한 자루에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45닢이요? 생각보다 많이 비싸네요……."
"허허, 좋은 물건에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법이지요. 특히 모험가라면 무기에 투자하는 돈을 아까워해서는 안 됩니다."
상인은 능숙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전부 지불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돈을 계약금으로 내시고, 나머지는 앞으로 의뢰를 수행하면서 갚으시면 되지요."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건가요?"
"당연하지요. 저희 상회에서는 유망한 신입 모험가들을 위해 특별히 분할 납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에린은 다시 검을 바라보았다.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상인은 그녀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 기다렸다는 듯 계약서 한 장을 꺼냈다.
"그럼 이쪽에 이름을 적어주시면 됩니다. 계약금은 은화 20닢이고, 나머지는 매달 나누어 납부하시면 되겠습니다."
에린은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처음 보는 어려운 표현이 많았고, 글씨도 상당히 작았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무기를 먼저 받고 나중에 돈을 갚는다는 것이었다.
"음…… 여기 적힌 추가 관리비는 뭔가요?"
"아, 그건 분할 납부에 필요한 수수료입니다.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에린이 펜을 집어 들려던 순간이었다.
"그거 내려놔."
낯선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에린이 고개를 돌리자 가게 입구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짙은 회색 머리카락을 뒤로 느슨하게 묶은 그녀는 가벼운 가죽 갑옷 위에 낡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으며, 허리에는 사용감이 뚜렷한 장검이 매달려 있었다.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인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여성은 대답 대신 에린이 들고 있던 계약서를 가리켰다.
"그 계약서. 아직 서명 안 했지?"
"아, 네. 지금 하려고 했는데요."
"잘됐네. 하지 마."
여성은 에린의 옆으로 다가와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내용을 몇 줄 읽어 내려가더니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은화 45닢에 관리 수수료까지? 이 양반, 아주 작정을 했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당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물건입니다."
"그럼 나도 하나 물어보자. 북부산 특수강이라면서 왜 검신 아래쪽에 남부 제철소의 제작 표시가 남아 있지?"
여성은 검을 들어 손잡이 가까운 부분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에린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왕도 근처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는 보급형 철검이야. 상태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은화 45닢을 받을 물건은 아니지."
"손님께서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그리고 이 계약서 말인데, 남은 금액을 매달 나누어 낸다고만 설명했지? 실제로는 월별 수수료가 붙어서 끝까지 갚으면 은화 60닢도 넘겠는데."
에린은 눈을 크게 떴다.
"60닢이요?!"
여성은 계약서를 다시 에린에게 건네주었다. 에린은 작은 글씨로 적힌 항목들을 살펴보았고, 그제야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인은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계약 조건은 모두 명시되어 있습니다! 손님께서 직접 확인하고 서명하시는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처음부터 제대로 설명했어야지. 신입인 걸 알고도 중요한 조건을 대충 넘긴 건 당신이잖아."
여성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주변에서 물건을 구경하던 손님들까지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상인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에린이라고 했나? 다른 가게로 가자. 여기서 살 이유 없어."
"아, 네……!"
에린은 황급히 검을 내려놓고 계약서를 돌려주었다. 상인은 끝까지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여성이 차갑게 바라보자 더 이상 두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
가게 밖으로 나오자 에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큰일 날 뻔했네요."
"큰일 날 뻔한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당할 뻔했지. 계약서에 이름까지 적었으면 나중에 골치 아팠을 거야."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처음이면 모를 수도 있지. 그래도 앞으로는 모르는 계약서에 함부로 서명하지 마. 특히 돈이 걸린 문제라면 더더욱."
에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도와준 여성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인사도 못 했네요! 저는 에린이라고 해요. 어제 모험가 길드에 등록한 F등급 모험가예요."
"어제 등록했다고? 그럼 정말 신입이네."
여성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세라. B등급 모험가고, 올해로 활동한 지 8년째야."
"B등급이요?!"
에린의 목소리가 예상보다 크게 울렸다.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고개를 돌렸고, 세라는 민망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놀랄 것까지는 없어. 왕도에는 나보다 경력 많은 사람도 많으니까."
"그래도 대단하잖아요! 저는 아직 F등급인데!"
"누구나 처음에는 F등급이었어. 나도 처음 등록했을 때는 약초 채집하다가 길을 잃어서 경비대 신세를 졌거든."
"정말요?"
"응. 그것도 왕도 성벽이 보이는 곳에서."
에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세라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짓하며 거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에린도 자연스럽게 그 옆을 따라갔다.
"그런데 검은 왜 사려고 했어? 토벌 의뢰라도 받으려고?"
"아뇨. 어제 약초 채집을 하다가 뿔토끼를 만났거든요. 그때 제대로 된 무기가 없어서 조금 위험했어요."
"뿔토끼라…… 다친 데는 없고?"
"네. 새끼들을 지키고 있던 것 같아서 그냥 물러났어요."
세라는 에린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그런 녀석들은 괜히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다만 다음부터는 약초를 캐러 가더라도 주변을 먼저 확인해 봐."
"네! 어제도 그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두 사람은 잠시 후 다른 무기점 앞에 도착했다. 간판에는 '브란의 대장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열린 문 안쪽에서는 대장장이가 뜨겁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여기는 내가 자주 오는 곳이야. 물건도 괜찮고, 적어도 신입이라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지는 않아."
세라는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브란 아저씨, 손님 데려왔어!"
"시끄럽다, 세라. 문 열려 있으면 그냥 들어오면 되지 뭘 그렇게 소리를 질러?"
안쪽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중년 남성이 작업용 앞치마를 두른 채 모습을 드러냈고, 세라의 옆에 서 있는 에린을 발견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제 등록한 신입이야. 한손검 하나 맞춰주려고."
"그렇군. 이름이 뭐냐?"
"에린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브란은 에린의 손과 팔을 잠시 살펴보더니 진열장 아래에서 검 몇 자루를 꺼냈다. 화려한 장식은 없었지만 손잡이가 튼튼했고, 검신에도 불필요한 무늬가 새겨져 있지 않았다.
"처음이면 비싼 걸 살 필요 없다. 손에 맞는 걸 골라서 쓰다가 나중에 실력이 늘면 바꾸면 돼."
에린은 검을 하나씩 들어보았다. 그중 두 번째 검은 무게가 적당했고, 손잡이를 쥐었을 때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이게 제일 편한 것 같아요."
"그럼 그걸로 해. 보급형 철검이고, 가격은 은화 12닢이다. 관리만 잘하면 한동안은 충분히 쓸 수 있어."
"12닢이요?"
에린은 조금 전 무기점에서 들었던 가격을 떠올렸다. 무려 33닢이나 차이가 났기에,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비싼 물건을 구입하려 했는지 새삼 실감했다.
세라는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어때? 이제 왜 내가 말렸는지 알겠지?"
"네…… 앞으로는 가격부터 여러 군데 비교해 봐야겠어요."
"그것도 좋지만, 물건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해.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싸다고 전부 나쁜 것도 아니니까."
에린은 브란에게 은화 12닢을 건넸다. 브란은 검집과 간단한 관리용 천을 함께 챙겨주었고, 검을 오래 사용하려면 습기를 조심하고 사용 후에는 반드시 닦아두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에린은 생애 첫 번째 검을 손에 넣었다.
대장간 밖으로 나오자 에린은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내려다보았다. 특별한 이름도 없고 전설적인 힘이 깃든 물건도 아니었지만, 자신이 직접 고른 첫 번째 무기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세라 씨,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덕분에 좋은 검도 샀고요."
"별말을 다 하네. 나도 마침 장비 수리 때문에 근처에 왔던 거야."
세라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걸음을 멈추고 에린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너, 앞으로 의뢰는 혼자 다닐 생각이야?"
"아직 같이 다닐 사람이 없어서요. 일단은 혼자 할 수 있는 의뢰부터 해보려고요."
"그렇구나. 신입 교육은?"
"길드에서 참가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다음 주부터 알아보려고요."
세라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달린 길드 금속패를 만지작거리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당분간 나랑 같이 다닐래?"
"……네?"
"나도 요즘 왕도 근처에서 처리할 일이 좀 있거든. 위험한 의뢰를 맡을 생각은 없고, 혼자 다니기에는 조금 심심해서."
에린은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눈을 깜빡였다.
"저랑요? 하지만 저는 이제 막 등록한 F등급인데……."
"알아. 그러니까 처음부터 어려운 의뢰를 같이 하자는 건 아니야. 내가 하는 일 중에는 신입도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
"그래도 제가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요?"
"방해가 되면 그때 말해줄게. 대신 내가 알려주는 건 제대로 배우고, 위험하다고 하면 괜히 고집부리지 않는 거야."
세라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의뢰 보수는 각자 한 일에 맞춰 나누는 거다. 내가 전부 대신해 주는 건 아니니까."
에린은 잠시 생각했다. 혼자 모험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자신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모험가와 함께 다닐 수 있다면 배울 것이 많을 터였다.
무엇보다 오늘 세라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터무니없이 비싼 검을 구입할 뻔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좋아요! 저도 같이 다니고 싶어요!"
"좋아, 그럼 내일 아침에 길드에서 보자. 마침 확인해 보고 싶은 의뢰가 하나 있거든."
"어떤 의뢰인데요?"
"왕도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들어온 조사 의뢰야. 근처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데, 마물인지 야생동물인지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더라고."
에린의 눈이 반짝였다.
"숲 조사요? 뭔가 진짜 모험 같네요!"
"너, 벌써부터 그렇게 좋아하면 곤란한데. 조사 의뢰는 대부분 별일 없이 끝나거든."
"그래도 처음 가보는 곳이잖아요. 저는 그런 것도 좋아요!"
세라는 에린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자신도 처음 모험가가 되었을 때는 작은 의뢰 하나에도 괜히 들뜨곤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너무 늦게 오지는 말고."
"네! 내일 뵐게요, 세라 씨!"
에린은 밝게 인사한 뒤 집으로 향했다. 허리에는 새로 구입한 검이 매달려 있었고, 가방에는 관리용 천과 장비 사용법을 적은 작은 종이가 들어 있었다.
오늘은 의뢰를 하나도 수행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중요한 것을 배웠다.
모험가에게 필요한 것은 검을 다루는 실력만이 아니었다. 물건을 고르는 방법도 알아야 했고, 계약서를 읽을 줄도 알아야 했으며, 때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내일부터는 혼자가 아니었다.
집에 도착한 에린은 부모님께 새로 구입한 검을 보여주었다. 토마스는 가격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리나는 딸이 상인에게 속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깜짝 놀라 몇 번이나 괜찮은지 확인했다.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 말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고 했잖니!"
"네, 어머니.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그래도 세라 씨가 도와주셔서 다행이었어요."
"그분께는 꼭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구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집으로 초대해도 좋고."
에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내일부터 세라와 함께 의뢰를 수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했고, 토마스는 상대가 B등급 모험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날 저녁, 에린은 방으로 돌아와 새로 구입한 검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브란에게 받은 관리용 천으로 검신을 조심스럽게 닦아낸 뒤, 검집에 넣어 침대 옆에 세워두었다.
아직 검을 제대로 사용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내일은 처음으로 다른 모험가와 함께 의뢰를 수행하는 날이었다. 에린은 작은 수첩을 펼쳐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했고, 마지막에는 새로운 이름 하나를 적어 넣었다.
세라
B등급 선배님? 모험가
잠시 고민하던 에린은 그 아래에 한 문장을 더 덧붙였다.
[내일 함께 의뢰를 수행하기로 했는데...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ㅎ]
수첩을 덮은 에린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왕도의 거리에는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고, 멀리 중앙 광장에서는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내일 필요한 물건들을 다시 확인한 뒤 침대에 누웠다.
처음으로 동료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