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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아웃

육성선수가 야구를 잘함 — novelpia.com · All chapters

트라이아웃

육성선수. 정식 선수가 아닌 선수다. 정식 선수가 아닌데 어떻게 선수냐고? 대충 연습생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구단에 소속되어 2군 경기는 뛸 수 있지만, 정식 선수는 아닌 신분. 그래도 연봉은 받는다.  그리고 지금 내가 되고자 하는 선수도 바로 이 육성선수였다.  보통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야구 선수들은 각자 먹고 살 길을 찾아 야구장에서 떠난다.  물론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나는 애초에 고등학교 1학년에 야구를 그만뒀으니까. 지명을 못 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드래프트에 참여 자체를 안 했다.    이번 생은 야구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좀 많이. 2030년의 한국 야구, KBO의 육성 선수나 2군 선수의 연봉은 대부분 최저 연봉인 4천만원. 절대로 작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큰 금액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잘해서 1군으로 등록되기만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군 최저 연봉은 무려 8천5백만원.  물론 등록 일수에 따라 받을 돈이 달라지겠지만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이 어디 가서 8500만원을 벌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야구 말고는 안정적으로 많은 돈을 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결국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왔다.  자신은 있었다. 저번 생에서 나는 꽤 잘나가던 야구 선수였으니까. 모든 야구 선수들에게 꿈의 리그라고 불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특출난 선수였고, 리그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MVP도 받아봤다.  물론, 지금은 19살 짜리 꼬마일 뿐이지만."이번 트라이 아웃(입단테스트)에 지원한 지원자들은 이력서랑 신분증 가지고 모여주세요!" 코치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소리치자, 모여있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대열을 갖춰 이동해 나도 합류했다.   사람이 많았다, 하긴 어디 프로 자리가 쉽게 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돈을 받으면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다. 그리고 지금 시기에 트라이 아웃을 진행하는 구단은 여기 말고는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릴 수 밖에."와, 키 엄청 크네…" 혼잣말이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선이 마주쳤다. 17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내 시선을 받고 고개를 긁적였다.  약간 귀염상이라 운동 선수 얼굴 같지는 않은데 싶다가도 짧게 친 머리를 보면 또 운동 선수 같기도 한 남자는 내게 사과를 건네왔다."아, 죄송합니다. 키가 엄청 크셔서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아닙니다. 이렇게 된 거 통성명이라도 할까요? 유성현, 19살입니다.""…19살…?" 내 나이를 듣고 얼빠진 표정이 되어버린 남자. "에이, 형님. 장난이죠?""…장난 아닙니다.""아니 요즘 애들은 도대체 뭘 먹길래 이렇게 크지…? 아. 죄송합니다. 어. 최강혁이고… 나이는 22살입니다.""말 편하게 하세요. 형님이신데.""아니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고…?""신분증이라도 보여드릴까요?" 내 대답에 그제서야 믿는 강혁이 형. 뭐, 전생을 따지면 내가 형이라고 부르기에는 뭐하지만, 이 몸으로 19년을 살아와서 형이나 누나같은 호칭도 익숙해진지 오래다."그런데 19살이면 드래프트에서 지명 못 받은 거야? 그러면 육성 선수 신청 자체가 의미 없지 않아?" 저 말은 사실이다. 드래프트에 참가해서 지명을 못 받은 고졸 선수는 육성 선수로 뽑지 않으니까. 이미 스카우터들이 전부 파악을 끝냈는데 지명이 안 됐다?  즉시 전력감도 안되고, 발전 가능성도 없다고 판단하여 팀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라고 확정한 것. 그런 선수를 굳이 연봉을 줘가며 육성 선수로 입단 시킬 프로 팀은 어디에도 없다."저 드래프트를 참가 안 했습니다.""엥? 그건 또 무슨 소리야? 19살이면 고등학교 졸업한 거 아닌가? 드래프트 참가 자체를 안 했다고?""제가 고등학교 1학년에 야구를 접었어서…""…뭐?" 그렇게 이어진 스몰토크. 강혁이 형은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자, 바로 군대를 다녀왔다고 한다. 머리가 짧은 것도 전역한 지 이제 6개월 정도 지나서 그렇다고.  군대에서 최대한 몸을 만들었다고 했다. 요즘 군대는 자유 시간이 꽤 주어져서 몸을 만들기에 꽤 좋은 환경이라는 말도 덧붙여서. 지금이 겨울이라 외투에 가려져 있어 몸에 대한 평가는 내릴 수는 없었지만, 저 정도 자신감이면 꽤 잘 만든 모양."내가 빠따는 좀 자신 있는데… 수비가 좀 그래서 지명을 못 받았었지. 전역 이후에 독립 리그에서 뛰고있다가 여기 트라이아웃 한다고 하길래 신청했고.""그래요? 그런데 어디 출신이세요?""나? 서울 출신이야.""아 말투가 좀 달라서 혹시나 했는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어요?""기차 타고 내려와서 버스탔지 뭐…""그런데 1월에 트라이 아웃이라니, 상당히 이례적이긴 하네요.""아니… 성현이 너, 소식 못 들었어…?""무슨 소식이요?""아니, 부산 타이탄즈가 지금 트라이 아웃 연 이유도 모르고 지원했다고?""아, 대충은 알죠. 주전 선수 교통사고도 있었고, FA에서 주축 선수도 놓치고. 그래서 이례적으로 스프링 캠프 전에 대졸자나 독립리그 선수같이 즉전감을 찾기 위해 열었다고 들었어요." "심지어 음주운전 사건도 있었지. 슬슬 우리 차례네. 아무튼 좋은 결과 얻길 바래. 성현 동생.""감사합니다. 강혁 형님도요." 우리 차례가 다가와서 대화가 끊겼다. 준비한 이력서와 신분증을 코치에게 내밀었다."나이가… 19살? 키가 197cm 체중이 108KG. 야수 지원, 주 포지션은… 다 가능? 허허, 이게 요즘 젠지세대인가 하는 그런 건가? 자네. 그래, 성현이. 주 포지션에 다 가능이라는데, 이게 뭔가?""일단 전 포지션 다 가능합니다.""그래? 허허. 고등학교 2학년 부터는 야구도 안 했으면서?""…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그랬으면 좋겠군. 이력서에는 고등학교 1학년 까지 투수를 했다고 적혀있는데 굳이 바꾼 이유라도 있는가?""아, 키가 계속 커서 제구가 안 잡혀서 바꿨습니다.""흠, 그래. 나중에 테스트할 때 확인하지 그럼." 아, 좀 화난 것 같은데? 하지만 전 포지션에서 1인분은 할 자신이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전 메이저리거다. 문제는 고등학교 1학년에 야구를 그만두고 쉬었다는 것이지만. 제일 걸리는 부분은 역시 몸을 만드는 것. 내가 야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거의 60퍼 정도는 완성하지 않았을까? 보통 23, 24살 정도면 몸이 완성되니까.  하지만 지금도 계속 키가 크는 상황이라 또 모르겠다. 이 정도면 더 크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즈인데.  오히려 여기서 더 크면 키에 따라 적용되는 스트라이크 존 특성상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어서 이 이상 크는 건 극구 사절인데."…신청은 끝났으니 가서 몸 풀고 있게.""네, 감사합니다." 외투를 벗고,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성현 동생.""아, 강혁이 형.""바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조금 대기하라네.""저도요.""그러고보니 투수야, 타자야?""일단은 타자입니다.""그래? 나랑 포지션 겹치는 건 아니지?""형님은 어디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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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단 2루수로 테스트 할 예정이긴 한데… 솔직히 자신은 없다. 사실 1루로 지원하고 싶었는데 1루에는 황캡이 계시니까. 내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지.""황캡이요?""아니 너, KBO 보긴 하는 거야? 드래곤즈 팬인 나도 타이탄즈 주장 황재훈은 아는데…?""아. 황재훈 선수." 내 기억 속에 있던 선수다. 그 사람, MLB에서 4년 정도 뛰었던 선수 아닌가?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상대 팀으로 만난 적도 있었다."황재훈 선수가 앞으로 2년 정도는 할 예정이니까. 그 동안 1루는 사실상 없는 자리인 셈이지.""애초에 형님, 키가 1루 핏은 아니긴 하네요.""그렇지. 1루는 보통 키가 좀 커야 하니까.""그래도 2년 정도면 2군에서 좀 구르면서 갈고 닦으면 자리가 나지 않을까요?""1루 자리는 그래도 장타력이 높은 타자 자리니까… 그리고 나도 아직 젊으니 수비 실력을 늘려야 나중에 혹시라도 FA 취득해도 돈 많이 벌 수 있잖아.""흐음. 맞죠." 고민을 깊게 했구나. 확실히 사이즈가 1루에 어울리는 사이즈가 아니다. 170 후반, 야구라는 종목에서 키가 엄청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1루수는 무조건 커야 좋다.  공을 받는 그 찰나의 시간 차이로 아웃과 세이프가 갈리는 종목이 야구니까."그래도 여긴 별로 안 추워서 다행이다.""별로 안 춥다고요…?""서울 살아봐. 여기랑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거기 오늘 영하 5도 찍었어.""끔찍하네요."  두 명이서 서로 도우면서 몸을 풀었다. 외투에 가려진 강혁이 형의 몸은 자신감을 가질 정도였다. 꽤 잘 만들어진 몸이다. 메이저리그도 아닌데 저 정도 몸이면 괜찮지 않나? 그리고 몸을 거의 다 풀자 나를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보던 코치가 직원으로 보이는 몇 명과 같이 무거운 기계를 마운드로 밀기 시작했다. 오, 저거 트라젝트 아크잖아? 저거 꽤 비싼 물건인데, KBO도 썼구나? 수준 낮은 리그라고 생각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다시 봤다. 트라젝트 아크, 통칭 '투수 복사기'. 투수의 구종과 구속, 회전수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복사해내는 기계다.  즉시 전력감을 뽑기 위한 트라이 아웃인건 알았지만, 저 비싼 기계를 육성 선수 뽑는데 쓸 줄이야. 하긴 가만히 놔두면 쓸 곳도 없을텐데 이런 곳에라도 쓰는 게 맞긴 하지."자! 타자 지원자들! 전부 주목! 이 기계에서 공이 나갈 겁니다. 기회는 3타석을 줄 예정이며, 구종은 포심으로 고정입니다. 참고로 모든 공은 스트라이크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강혁이 형이 기계를 보고 궁금한 표정을 짓길래 친절하게 설명해줬다."투수 복사기?""네. 아마 1군 투수의 공을 복사해서 던질 가능성이 높을 거 같은데요? 즉시 전력감을 뽑는다고 했으니.""허, 1군 투수라니…""포심만 던진다고 하니까, 자기 스윙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요?""그건, 그렇지만… 난 독립 리그만 뛰어서. 하아." 자신감이 떨어진 듯한 반응. 이래서야 야구 선수 하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진행되는 트라이 아웃. 대부분의 선수들이 만족할만한 컨택력이나 파워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강혁이 형의 이름이 호명되고, 잘 하고 오겠다며 타석에 선 강혁이 형. 좌타구나, 타격폼이 굉장히 특이한데? 배트를 거의 수평으로 맞춰 어깨에 걸치고, 상체를 극단적으로 숙인 이상한 타격폼.  저러면 상하체의 꼬임 자체는 만들기 쉬워진다. 다만 저런 자세는 높은 공 컨택이 힘들어지지 않나?ㅡ 따악!ㅡ 따아악!ㅡ 따아아아악ㅡ! 뭐야, 왜 잘 치는데? 이런 사람이 왜 지명을 못 받은 거야?"좋아, 자네! 공 좀 받아보게!""네!" 3번의 타석, 모든 타구질이 굉장히 좋았다. 배트의 중앙에 잘 맞췄다는 것. 심지어 포심의 구속도 140 중반은 넘어 보였는데. 저 정도 컨택력과 작은 사이즈 치고 꽤 강한 갭파워. 상당한 배트 스피드까지.  물론 메이저리거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더블 A ~ 트리플 A 사이 수준의 타자는 될 것 같은데? 저런 타자가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못 받았다고? 기계를 조종하던 코치도 만족하며 수비를 지시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시키지도 않았던 수비. 어디 한번 볼까? "일단 간단한 플라이 볼부터!"ㅡ 퍼억!"엌!" 아. 저걸… 못 잡는다고? 안면으로 야구공을 받고 그라운드에 쓰러진 강혁이 형을 짠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프로 경기에서 쓰는 야구공은 맞으면 엄청나게 아프니까. 어휴, 얼굴 빨개진 거 봐."…자네, 괜찮나?""괘,괜찬흣니다!""그래… 계속해도 되겠나?""넵!" 그렇게 시작된 수비 연습. "이런 급의 타자가 도대체 왜 드래프트에서 지명조차 못 받았지?" 라는 내 의문은 깔끔하게 해소되었다."으,으악!" 저 수비하는 꼬라지를 봐라. 지명을 마음 먹었던 팀들도 저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