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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아웃(2)

육성선수가 야구를 잘함 — novelpia.com · All chapters

트라이아웃(2)

답이 없다. 강혁이 형의 수비를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이다. 타격 테스트 때만 해도 꽤 좋았던 코치의 얼굴도 수비 테스트를 시작하고 3분도 안 돼서 흙빛으로 변했으니,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모양. 야구에서 타자에게 요구되는 5가지의 툴. 파워, 컨택, 주루, 수비, 어깨(송구).  그중 파워와 컨택은 상당히 괜찮은 수준인데… 수비가 저래서야 원.  아무리 겨울이라 땅이 얼어 불규칙 바운드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평범한 바운드도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는 것이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그나마 어깨는 괜찮아 보이는 것이 다행인데 2루수는 어깨가 중요한 포지션은 딱히 아니라서. 유격이나 3루면 강한 어깨가 중요하지만 2루는 상대적으로 어깨가 약해도 상관없는 포지션이다. 사실 이게 육성 선수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아니지, 오히려 파워와 컨택이 상당하니 평균보다 위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한 이유가 있는 법. 대부분은 5가지의 툴 중 2개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좌타 대타 자원으로 뽑힐 정도는 되는 것 같으면서도 KBO의 정확한 수준을 아직 모르니 판단하기에는 애매하다."여기까지 하지. 테스트 결과는 나중에 휴대폰으로 보내주겠네.""네, 감사합니다!" 얼굴에 플라이 볼을 맞아 새빨개진 얼굴로 내 쪽으로 다가오는 강혁이 형. 으, 보기만 해도 아픈데? "하… 이번에도 글렀나?""그래도 형님 육성 선수급 빠따는 아닌 것 같은데, 뽑히지 않을까요?""…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너 하는 거 봐도 돼?""뭐 그건 자유죠." 그렇게 강혁이 형은 내 테스트를 지켜보기 위해서 다시 외투를 입고 나와 계속 수다를 떨었다. "자! 유성현! 타석으로 오도록!""네." 오랜만이지만, 타석에 서는 것이 어색하진 않았다. 20년이 가까운 시간을 메이저리거로 살았던 나다. 어색할리가 있나. 최근 며칠 동안 쉐도우 스윙을 하며 폼을 점검하기도 했고, 아직 몸이 덜 만들어져 홈런을 만들어 내긴 힘들겠지만 배트 중앙에 맞추면 2루타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197이라는 큰 키에서 나오는 파워가 있을테니."자네, 장갑은?""아." 이런 미친. 그걸 까먹다니. 안 그래도 미운털이 박힌 상태인데, 코치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썩어 들어갔다. "…강혁이형! 혹시 배팅 장갑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어, 어어!" 내 외침에 처음에 뭐지하고 쳐다보던 강혁이 형이 헐레벌떡 다가와서 가방 속 배팅 장갑을 빌려주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강혁이 형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아니 너, 배팅 장갑도 안 들고 왔어?""…죄송합니다.""허. 어디 그 잘난 실력으로 말해주게.""넵." 좌타석에 자리를 잡았다. 야구에서 우완 투수가 유리한가, 좌완 투수가 유리한가는 논쟁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우타자가 유리한가 좌타자가 유리한가에는 정답이 있다. 무조건 좌타자가 유리하다. 간단하다, 1루까지의 거리가 좌타석이 훨씬 가깝기 때문."좌타인가? 일단 우투가 던지는 궤적으로 설정하지.""네." 기본적으로 전 세계 기준 오른손잡이의 비율은 85퍼에서 90퍼 정도. 당연하게도 우완 투수가 더 많고, 더 자주 상대할 수 밖에 없다.  보통 투수들이 가장 필수적으로 장착하는 슬라이더가 같은 손 타자에게 유리한 궤적을 가져가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는 같은 손 타자가 웬만하면 편하다.  거기에 시야적인 문제도 있고, 자기 몸 쪽에서 날아오기 시작하면 본능적으로 움츠러 들 수 밖에 없기도 하고… 여러모로 같은 손 타자가 투수 입장에선 편한 셈. 반대로 타자는 다른 손 투수가 더 편할 수 밖에 없다. 일단 시야적으로 더 잘 보일 수 밖에 없으니까.  하여튼, 이러한 이유들과 좌타석이 가지는 유리함 때문에 유독 야구에서는 우투 좌타가 많은 편이다. 당장에 그 오타니 쇼헤이 조차도 우투수인데 좌타자이지 않는가? 그래서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한 좌완이 필요하고. 좌완은 우완보다 훨씬 귀하게 대접받는 것이 현실. 좌완에 벼슬아치를 합친 좌슬아치 라는 말도 평범하게 쓰이는 곳이 야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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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젝트 아크를 조정하던 코치가 준비하라고 말해서, 타석 맨 뒤에 서서 타격 자세를 취했다. 전생과 다르게 키가 달라져서 타격 폼을 뜯어 고쳐야 했다.  그래도 완벽한 롤모델이 있지 않는가. 오타니 쇼헤이. 거포 좌타자의 정석과도 같은 타격 폼. 키 차이도 얼마 안나 좋은 참고 자료가 되었다. 다만,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 토텝은 쓰기 힘들다. 아직 근육이 전부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에 토텝으로는 원하는 배트 스피드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다리를 높게 들어 올리는 레그킥을 써야 하는데, 이러면 155KM가 넘는 빠른 공들에 대한 대처가 늦을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나도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는 토텝을 썼지만… KBO 평균 포심 구속이 148KM 정도라고 하니까, 레그킥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흡." 트라젝트 아크는 홀로그램으로 투수가 던지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말 그대로 투수 복사기인 기계.  화면 속 투수가 힘껏 와인드 업을 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숨을 멈춘다. 가슴을 피고 배트를 높게 핌과 동시에 팔꿈치를 높게 들어 올렸다. 전신에 힘을 주면서도 동작이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과한 힘은 자중한다.  이 상태에서 약간의 토텝으로 몸 뒤쪽에서 힘을 모으고 앞발을 지면에 고정하며 팔꿈치 내리기 ㅡ 스윙 ㅡ 하이 피니시 팔로 스루(양손을 높게 들어 올려 몸을 완전히 젖히는 동작)로 이어지는 동작으로 타격하는 특유의 타격 폼이 오타니 쇼헤이의 타격 폼이다. 토텝에서 레그킥으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하게 비슷한 타격 폼으로 존 중앙에 들어오는 포심을 강하게 당겨서 때려냈다. 물론 배트 스피드는 훨씬 떨어지겠지만. ㅡ 따아아아악!!!"…어?" 강혁이 형과 아직 남아있는 다른 참가자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경쾌하고도 강렬한 타격음. 코치의 표정이 스윙 한번에 바뀌었다.  야구가 본래 그런 종목이다. 스윙 한번에 모든 것이 바뀌는, 일발 역전의 스포츠. 하지만 공은 담장 밖으로 사라지지 않고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를 가르며 바닥에 떨어져 펜스까지 굴러갔다. 여지없는 장타성 코스. 역시 아직 힘이 부족하다. 레그킥까지 했는데도 이걸 못 넘기네. 여기서 홈런을 치려면 발사각을 더 높이고, 더 강하게 쳐야 하는데…. 아무래도 쉽지 않을 듯 싶었다. 근력이 부족하다. 타구 속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방금 발사각이 15도 정도였나? 몸이 다 만들어지기 전 까지는 이 정도 평균 발사각을 유지하며 안타 생산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았다."…다시!""네. 잠시만요." 타석 밖으로 나가 배팅 장갑을 다시 점검하고 자세를 잡았다. 음, 배트 무게도 좀 조정해야 할 것 같은데. 돈이 없어서 새 배트를 사지는 못했다.  야구가 이게 참 불편하다니까.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코치가 기계를 조작하더니 그 다음 공은 몸 쪽으로 붙어오는 공. 이 타격 폼은 몸 쪽 공을 당기기에 최적화 된 자세다.  굳이 약점이라면 바깥쪽 낮은 존인데, 이 코스는 투수가 잘 던지면 원래도 치기 힘든 코스다.  다시 울려 퍼지는 경쾌한 소리. 그 다음 공은 바깥쪽 포심이라 기술적으로 3유간으로 낮게 밀어쳤다. 이 힘으로 바깥쪽 코스까지 당겨치면 10에 아홉은 2루 땅볼 혹은 우익수 뜬공으로 아웃이다. 타구속도가 빨라서 완벽한 안타 코스다. 공의 궤적을 확인한 코치의 얼굴이 밝아졌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인상을 찌푸렸다. 음, 어지간히 첫 인상이 별로였나?"이번에는 좌투로 설정하지.""네." 다른 손 투수의 포심에 대처하는 모습을 봤으니 이번엔 같은 손 투수 상대로 보겠다는 건가? 그런데 강혁이 형이나 다른 선수들은 이렇게 안 하지 않았나?"잠깐, 자네 스위치 히터(투수의 손에 따라 타석을 바꾸는 타자)인가?""네.""허어. 그래?" 우타 거포에 사이즈가 비슷한 선수로는 역시 애런 저지만한 선수가 없긴 한데. 아무래도 애런 저지의 타격 폼을 쓰기에는 파워가 부족해서 주구장창 우익수 뜬공을 만들어낼 것 같아 선뜻 따라하기에는 애매하다고 판단해 방향을 틀었다.  애초에 이 몸은 전생과 다르게 오른손잡이가 아니라 왼손잡이라 좌타에 비해 파워가 더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알버트 푸홀스의 자세. 푸홀스의 타격 폼은 이른바 기마자세라고 불렸다.  뒷발에 체중을 실어 놓은 상태로 양 발을 넓게 벌리고 하체 이동(스트라이드)이 거의 없이 약간의 토텝과 압도적인 상체의 꼬임과 회전력을 이용한 로테이셔널 타격의 대표격인 자세. 이 타격폼의 압도적인 장점은 공을 끝까지 볼 수 있고, 기본에 충실한 간결한 인앤 아웃 스윙으로 인한 소위 말해 '효율'이 높아 어지간해서는 삼진을 잘 안 먹는다는 것. 좌타와는 다르게 레그킥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왼손잡이라 상대적으로 팔로 스윙에서 힘이 덜해 레그킥을 해도 장타를 생성해내긴 어렵다.  애초에 타격 폼 자체가 하체는 지렛대의 역할만 하는 폼이라 굳이 추가해도 별다른 이득이 없는 폼이기도 하고."흡."ㅡ 따아악! 트라젝트 아크 화면이 달라지고, 좌투수로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도 첫 공은 정 중앙의 포심. 간결하게 잡아 당겨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코스. 다만 좌익수 수비 범위가 넓다면 잡을 수 있을 정도. 몸 안 쪽으로 말려 들어오는 포심은 강하게 잡아당겨 3루쪽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들었다. 타구 속도가 꽤 빨랐으니 어지간한 3루수가 아니면 잡기 힘들만한 타구.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는 어지간하면 잡히긴 할 타구긴 한데… 이 정도 타구질이면 나쁘지 않지.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배럴타구 였으니. 바깥쪽 포심은 밀어쳐 1루-2루 사이를 뚫어냈다. 다만 수비 시프트에 걸리면 얄짤없는 코스. 타구 속도가 느리다. 좌타는 스프레이 히터로 최대한 2루타를 노리고, 우타는 똑딱이로 노선을 잡기로 마음속으로 결정 내렸다.  "도대체… 뭐야?" 근처에서 지켜보던 강혁이 형이 귀신이라도 본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고, 나는 애써 무시했다. 애초에 경험이 다르고 타고난 피지컬이 다르다. 메이저리그에서 155를 가뿐히 넘나드는 변형 패스트볼과 160대 포심을 보다가 정직한 140 중후반 포심을 보면 느릴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야구를 쉬긴 했어도 지금 몸이 전생의 몸보다 기본 피지컬이 더 우월하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 두 분 다 평범한 한국인에 운동선수도 아닌데, 조상에 바이킹이라도 있었나? 심지어 작년 중반에 쟀던 키가 195였는데 올해는 더 커졌다. 아직도 크고 있는 미스터리한 몸."…좋아! 자네 수비도 전 포지션 가능이라고 했지?""포수 정도만 제외하면 다 가능합니다.""그래! 준비하게나!"  사실 포수도 땜빵으로 뛰어본 적이 있기야 한데… 포수는 사람이 할 포지션이 아니다. 나이 먹은 포수들 보면 거의 종합 병동이 따로 없다. 무릎 연골부터 허리 디스크, 최악의 질환인 치질까지.  괜히 포수를 노예라고 하겠는가? 다 이유가 있는 법."그런데 자네 글러브가 수비용 글러브가 아닌 것 같은데?""괜찮습니다. 이걸로도 충분해요.""…그래. 어디 실력으로 보여주게." 후, 적어도 얼굴에 공은 안 맞아야지. 은하가 쫑알쫑알 잔소리를 늘어 놓는 상황을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 내 건강에 관해서는 얄짤없는 사람이니까."일단 3루에 서보게!" 다시 집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