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하
백은하
전화 통화를 마치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 15분 정도 기다렸나? 지원한 투수들을 살펴보다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야구장 밖으로 나왔다."아들~""추운데 나오지 마시지. 은하는요?""차 안에 있지~ 점심 먹으러 가자!""네." 어머니의 차는 흔하디 흔한 승용차. 이 몸의 단점. 승용차에 들어가기에는 몸이 너무 크다. 아니 이 정도까지 크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아버지 어머니 키가 대충 175에 160인데? "트라이 아웃 잘됐어?""내가 누군데? 알잖아.""하긴, 우리 남편이니까~" 차 뒷 자석에 앉아 있던 은하가 내게 말했고, 가볍게 웃어주면서 대답했다. 찬란한 금발과 푸른 눈. 전생과 똑같은 모습이다. 누가 봐도 절대 한국인은 아닌 외모.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엄연히 한국인이었다. 참고로 부모님도 두분 다 한국인이다. 어머니 쪽 혈통이 미국이랑 섞였다고 듣기야 했는데… 전생과 같은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 분명 저번 생에서는 우리 둘 다 보육원 출신으로, 부모님이 없었다. 나야 아예 다른 몸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은하는 같은 몸인 것 같은데. "어휴~ 좋아 죽네 죽어. 맨날 심드렁한 표정만 짓던 애가 은하 네 앞에서만 웃는다니까?""남편! 어머님한테도 좀 웃어주고 그래!""크흠.""저거 또 얼버무리는 거 봐라. 이래서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다니까?""어머니, 하린이 키울 때는 저 같은 아들 없다고 하셨잖아요?""몰라 이놈아! 어휴. 갑자기 대형 사고를 치지를 않나, 다시 야구를 하겠다고 하질 않나… 아가. 대학교 1학기만 다니고 휴학 한다고 했지?""네, 어머니. 특별 휴학이라 2년까지는 상관없이 가능하고, 일반 휴학으로도 3년까지 쓸 수 있다고 확인 받았어요! 상황 보고 결정하려구요!""어휴… 낳겠다고 한 거를 내가 막을 수는 없지만… 아직 대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좀 나중에 결혼해서 낳지. 으이구… 평생 동안 사고 한번 안 치던 녀석이…" 어머니의 말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억울하다. 성인이 되자마자 기념으로 술 먹자고 해서 불려나갔다가 눈 떠보니 호텔이었는데."사돈 어른이 너 때려 죽여도 모자랐는데, 순순히 넘어가시다니. 우리 아들은 진짜 운이 좋아~""어머니, 그건 저도 당황하긴 했어요.""안전벨트 매고. 슬슬 출발하자. 우리 점심 뭐 먹을까?""음, 날씨도 추운데 갈비탕이나 먹을까요?""평소에 가던 가게로 갈까?""네네." 어머니가 운전에 집중하고 말이 없어지자 내 옆에 앉은 은하가 몸을 바짝 붙여왔다. 은은한 향기에 입꼬리가 진정되지 않았다. 은하가 내 옆에 붙어서 휴대폰을 들고 노트앱을 키더니,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ㅡ 사실 있잖아? 내가 우리 부모님 엄청 가스라이팅 했거든. 그래서 별말 안 하셨을걸? … 가스라이팅? 이게 무슨 소리야?ㅡ 내가 중학교 1학년 정도? 그때부터 엄마랑 아빠한테 내가 너랑 애 낳으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봤거든. 세상에. 도대체 몇 년짜리 계획이야? 어이없다는 내 표정에 킥킥 웃는 은하. 허어…. 나도 휴대폰을 꺼내서 메모장을 켰다.ㅡ 그런데 진짜 괜찮겠어? 대학교 졸업하고 낳는 편이…ㅡ 싫어. 그러다가 전생처럼 내가 어디 아프면? 난 무조건 올해에 낳을거야.ㅡ 고집은 전생이나 지금이나…ㅡ 네가 할 소리야? 내가 병원에서 몇 년을 누워있었는데? 나 좀 놔주라고 해도 못 놔주던 사람이 너면서 뭘.ㅡ 그건 또 그렇네. 기적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분명 우리 두 명은 동시에 죽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히 기억나고, 은하에게 물어봐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으니. 우리가 둘 다 정신병을 앓고 있어서 기억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마 사실일 것 이다. 그 때가 대충 2040년이었다. 우리는 2000년 생이었고. 그런데 존재만 알고 있던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2010년에 다른 사람으로, 전생의 기억은 가진 상태로 다시 태어나다니. 이걸 기적이 아니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어휴, 둘이서 아주 그냥 물고 빨고 다 하겠어 아주?""크흠.""어머니, 방금 허락하신거죠?""은하 너는 도대체 우리 아들의 뭐가 그렇게 좋아서 유치원 때부터 끼고 사는 거니…? 아무리 내 아들이라고 하지만 평소에 지 아비 닮아서 무뚝뚝하고, 덩치도 곰 같아서 어쩔 때는 무서운 녀석인데?""후후. 그 덩치가 매력이에요, 어머니.""그런데 하린이는 왜 같이 안 왔어요?""하린이?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아직 화해 안 했어?""애초에 싸운 적이 없는데…""뭐야, 남편. 하린이랑 싸웠어?""아니야. 내가 하린이랑 왜 싸우겠어." 유하린. 7살 터울의 여동생이다. 천애고아였던 내게도 동생이 생겨서 금이야 옥이야 하고 잘 키웠는데, 내 결혼 소식을 알리자 마자 대화가 완전히 단절됐다. 항상 커서 오빠랑 결혼하겠다고 말하던 귀여운 동생이었는데, 이제 사춘기가 올 나이인 모양. 그렇게 갈비탕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트라이 아웃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응? 뭐야? 진짜 합격했다고?""어머니, 아들 못 믿으세요?""아니, 중학교 때도 거의 경기에 안 나갔고… 고등학교 은하랑 떨어지자마자 바로 야구 그만두고 은하 학교로 전학 갔잖니? 야구 그만둔 지 3년 정도 됐는데 그걸 붙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니?""제가 자신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제 대학교는 입학 취소 할게요.""아니, 그래도 은하랑 같은 대학교 갈 정도로 열심히 공부 했으면서… 휴학하면 안 되는 거니?""1학기는 다녀야 하는데, 당장 2주 있다가 스프링 캠프에 합류 해야 해서… 힘들 것 같아요.""흐음… 뭐, 구단도 생각이 있으니 합격을 줬겠지? 그럼 바로 연봉 받는 거니?""네. 일단 4천부터 스타트에요."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은하는 대충 알고 있던 내용이라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이번 생에도 내가 야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뭐, 확신할 건 아니고. 내가 트라이 아웃에 지원하겠다고 하자, 뛸 듯이 기뻐하긴 했다. 학생 때 괜히 야구를 그만 뒀다고 생각할 정도로. 다만 내가 야구를 그만 둔 것은 이 나라의 유소년 코치들과 감독들이… 좀 많이 쓰레기더라. 중학교 때 재형이 녀석의 권유에 못 이겨 들어간 야구부. 그 당시에는 전생에서 쓰던 손과 현생에서 쓰던 손이 달라 밸런스가 안 잡혀 고생을 좀 했는데, 감독이 내 공이 빠르니까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가운데에 넣으라고 했다. 거기에 선발로 나가서 공을 100구 정도 던지라고 하던 미친 감독. 이유도 웃겼다. 계속 던져봐야 뭐가 스스로 바꿔야 할 부분을 깨닫는다고 했던가? 일본 고등학교에서나 통할 법한 감독이다. 고시엔에서 150구씩 던지는 걸 그 때만 할 수 있는 낭만이라고 포장하는 이상한 나라니까. 인간의 몸은 소모품이다. 그리고 투수가 공을 던지는 행위 자체는 팔꿈치에 엄청난 부하를 만들어내고, 하루 걸러 투수들의 팔꿈치가 터져나가는 곳이 야구판. 그런데 성장도 안 끝난 몸으로 선발로 나가서 100구를 던져라? 팔꿈치 인대가 터지든 말든 당장 자기 성적이 중요하니까 그런 소리를 했겠지. 나는 당연히 항명했고, 감독과 코치는 나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다. 재형이 그 녀석만 야구부에 없었어도 진작 그만뒀을 거다. 포수에 재능도 없는 녀석이 블로킹 연습하는 꼴을 보니 내가 복장이 터져서 옆에 붙어서 계속 잔소리를 했었다. 고등학교 감독과 코치는 그래도 좀 괜찮았는데 은하랑 떨어지니까 버틸 수가 없어서 쿨하게 야구를 접고 은하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3년 내내 붙어 다녔다."남편! 스프링 캠프 열심히 하고 와! 그럼 나중에 경기 티비로 볼 수 있는 거지?""육성 선수는 6월 1일부터 등록 가능해서…시즌 초반에는 보기 힘들 거야. 2군 경기는 중계도 잘 안 하는 편이라. 아, 시범 경기는 볼 수 있겠다. 그건 전부 참여 가능한 걸로 아는데.""우리 아들, 꿈도 크다. 올해 바로 1군에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거야?"어머니가 아들을 못 믿어주시면 어떡해요?""아니 현실이 그렇잖니? 난 아무리 생각해도 3년 동안 야구 안 하던 애를 뽑아준 구단이 문제 같은데?""어머니, 제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보셨어요? 올해 안에 1군에서 뛰는 모습 보여드릴게요.""거짓말은 몰라도 대형 사고를 친 건 봤는데…""크흠." 아니 진짜 억울하네. 점심을 다 먹고, 여권을 만들기 위한 사진을 뽑으러 집 근처 사진관을 방문했다. 어머니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라며 집으로 돌아가셨고, 자연스럽게 은하와 나만 남았다."날씨도 추운데 집에 들어가서 쉬지. 아직 초기잖아.""집에만 있으면 뭐 할 게 있어야지~ 남편, 증명사진 찍는 김에 우리 사진도 좀 찍을까?""그럴까? 친구들은 뭐해?"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입학 전에는 다들 바쁘게 놀러 다니기 마련. 친구를 만들지 못했던 나와 다르게 은하 친구들은 꽤 많았다. 내가 얼굴을 기억하는 친구만 해도 3명 정도는 됐으니. 친구를 못 만든 이유? 흔하디 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중간에 전학 온 190cm의 덩치를 가진 무뚝뚝한 남자? 나 같아도 먼저 다가가기 쉽지 않았을걸? 거기에 나도 딱히 노력을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는 조용히 맨 뒤에서 공부만 했고, 쉬는 시간에는 은하랑만 붙어 다녔다. 오히려 동성 친구보다 은하의 친구들과 친해진 케이스. 이번 생의 내가 못 생기진 않아서 여자들이 접근 해오긴 했는데… 난 은하 말고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뭐, 다들 술 마시러 다닌다고 바쁘지. 난 진짜 괜찮아. 후회도 없고.""…그래, 그걸로 네가 행복하다면야." 사진을 찍고, 근처 구청에 들러서 여권을 신청하고, 잠시 쉬기 위해 카페에 들어왔다."커피는 마시면 안되는 거지?""응. 뭐 마시지? 남편은?""나야 뭐… 오늘은 운동도 쉬니까. 디카페인으로.""그럼 나는 캐모마일 마셔야겠다." 음료를 주문하고 잠시 내 눈치를 보는 은하."…왜 눈치 보는 거야?""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좀 너무하지 않았나 싶어서.""뭐가?""그래도 나랑 같은 대학교 가려고 공부 열심히 했는데… 아쉽지 않아?""딱히? 솔직히 공부가 적성에 맞진 않아서. 괜찮아." 진짜 별 생각 없었다. 그냥 이 피지컬로 운동 말고 다른 거 하기도 좀 아깝기도 했으니. 대학교 가도 은하 공부에 방해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생에는 즐겁게 야구 했으면 좋겠어.""이미 사고를 쳐버려서 즐겁게는 힘들겠는데? 너랑 아기 먹여 살려야지.""그래도 이번 생에는 너나 나나 부모님도 계시고, 나름 두 집 모두 안정적이잖아.""그렇다고 이제 성인인데 언제까지 손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딱 기다려. 내가 올해 1군 폭격하는 모습 보여줄게.""3년을 쉬었는데 그게 가능해?""내가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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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기대 해도 돼?""마음껏 기대해도 좋아.""그럼 타이탄즈? 거기 우승 시킬 수 있어?""아,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최근 10년 순위가 78877788꼴꼴꼴 이던데?